[스크랩] ☞ 청소년기(2)=고민과 갈등의 시기
청소년기를 인생의 꽃에 비유합니다. 이 시기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며 가장 행복한 기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 당사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직업선택을 비롯해서 진로선택 및 배우자 선택 등의 무거운 짐으로 짓눌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갈등이 가장 많은 시절이기도 합니다.
청소년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향한 소명과 적성을 찾아내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개발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배움의 시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때에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지게 되고 삶 전체가 일그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인생 역전이라는 것도 있지요. 그러나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발달의 단계로 보면 이 시기는 자기 개발을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잘 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좌절도 맛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도 하고 갈등도 겪습니다. 그러므로 청소년기는 고민과 갈등의 시기인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갈등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 모색의 시간들이지요. 영적 청소년기도 이와 같습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있는 가운데 가버나움 회당에서 빵을 비유로 들어 자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말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 6:22~59). 이 비유의 말씀을 당시의 유대인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너무도 황당하고 신비주의적인 말씀입니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를 보고 이 사람은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다 떠나버립니다. 그들은 예수를 신비주의자로 보았거나 생각이 온전하지 못한 극단주의자로 보았음에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다들 예수의 곁을 떠나자 주님은 12제자들에게 “너희들도 떠나가려 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성경을 통틀어 가장 쓸모 있는 말을 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알았습니다.” 라는 정말로 정신 제대로 박힌 말을 하였지만 이후의 베드로의 행적으로 보면 이 때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겁니다.
어쨌든 이 고백으로 인해서 한 명을 제외한 11제자들은 주님의 완전한 제자가 됩니다. 이 신앙고백은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한 번은 절실하게 고백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유아기를 벗어날 정도로 성장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그 자신의 신앙고백을 만들어 기도록 합니다. 이 시기가 청소년기입니다.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 생활 가운데서 알게된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한 고백을 하게 하는 고통스런 과정입니다. 한 순간의 고백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그 고백을 이끌어내야 하는 지루하고 힘든 과정입니다 .
나님은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신인식을 형성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하고 다양한 과정으로 이끌러내면서 하나님 자신을 그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때마다 신앙고백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우리에게는 “왜”라는 질문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 청소년기를 지내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이 “왜”라는 질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가?”라는 질문들을 수도 없이 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바로 정체성을 확인하는 절차이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알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Deo Mistica 즉 ”신비하신 하나님“을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알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이 이제까지 알았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을 여기서 만나고 알아져 갑니다. 일반적이고 교리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와 계시고 자신을 향해서 끊임없이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일한 질문을 계속하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왔을 때 그들은 40년을 한결 같이 같은 음식을 날마다 먹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한 가지 만나만 먹이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가지 음식만 40년을 먹이셨습니다. 이 지루함이 광야의 특징입니다. 동일한 풍광과 동일한 음식들, 날마다 변함없는 이 지루함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견디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후에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가 견디어야 할 광야의 과정을 상징하는 ‘튀포스(typos:모형)'입니다.
유아기에는 하나님을 다 아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유아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모르겠다는 말이 입에 붙어 다닙니다. 이것이 청소년기에 속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 입에서 하나님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시 시작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절차인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통상적이고 기본적인 하나님 인식으로는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향하신 독특하고 구체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구체적으로 응답할 수 있고 막연하지 않고 보편적이지 아니한 자신만을 위해서 예비하신 소명으로 자신을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얼굴이 다르게 태어나듯이 각자의 개성에 맞고 소명에 맞는 하나님을 알아야만 제대로 응답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시기에 그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 고백이고 이 고백 위에 하나님은 그 집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바울 위에 세운 집과 베드로 위에 세운 집이 다르듯이 우리 각 사람에게 세울 집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하려고 광야의 학교를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맞춤식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우리의 고정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준비를 시키는 과정이 이 청소년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청소년기는 고민과 갈등이 시기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심은 인간적인 방법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들이 하는 방법처럼 말로하면 다 알아듣지 않겠습니까? 이성도 있고 학식도 있고 성인인 우리가 말로 하면 알아듣지 못할 까닭이 없는데 왜 말씀으로 하지 않고 모호한 방법으로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숙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은 그런 모호한 방법으로 이끄시지 않는다고 초를 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조언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이성적 요구에 잘 맞는 듯하지만 진실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넘어지게 만드는 유혹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봅시다. 문자로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말씀이 그리 쉬운 것입니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단순하여 아무런 갈등도 없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너무도 모호하고 알면 알수록 갈등만 생기고 이현령 비현령 식입니다. 이것이 기록된 말씀의 본질입니다. 성령의 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교리도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갈등과 다툼을 거쳐 얻어낸 공통의 신인식입니다.
몇 되지 않는 교리도 2000여년의 세월을 통해서 형성된 것인데 자신에게 향하신 독특하고 개별적인 신인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신앙고백으로 이끌어 내는 과정이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전능하시고 광대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알아가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며 말 몇 마디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십니다.
말은 오해를 낳습니다. 지금 듣는 것이 지금의 감정적 정서 속에서 이해하고 인식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감정과 정서가 바뀌어지면 그 지식의 배경이 되었던 말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고 재해석하게 됩니다. 지금의 감정과 정서를 배경으로 다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말씀을 다시 해석하고 다른 판단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행동이 수시로 바뀌게 되고 신인식도 바뀌어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런 모습이 지도자에게서 나타나면 그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갈팡 질팡하게 됩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서면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이 없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과 확신 위에 서서 환경이 변하든지 상황이 바뀌든지 관여하지 않고 오직 굳은 믿음과 일관된 태도로 문제를 대면하고 돌파합니다. 이렇게 흐트러지지 않은 믿음이 지도자에게서 나타나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보면 모호한 것 같은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하시지 않고 현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상황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그 삶이 곧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갔고 하나님은 그 종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장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