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자료

[스크랩] ☞ 청소년기(4)-승리와 패배의 갈림길

아 푸른하늘 2009. 10. 29. 22:40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에게는 한없는 사랑과 관심을 쏟으시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에게는 전혀 돌아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는 더욱 더 많이 주시지만 없는 자에게는 그 가진 것도 빼앗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즉 부익부 빈익빈의 법칙이지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의 냉철하심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막연하고 흐리멍텅한 자세는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의 엄격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는 것은 어설프고 설익은 지도자가 하는 말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책임을 지는 태도를 항상 유지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더 엄중한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야고보 사도가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승 된 우리가 더욱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입니다(약 3:1).

영적 성숙이란 바로 이 점을 확실하게 경험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위 하나 하나가 심판대에 오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움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책임감을 가진 행위가 곧 사랑임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철저한 책임을 가진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진실은 곧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이것을 배우는 시기가 청소년기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하찮은 사람이 되어 있는 둥 없는 둥 살아갈 것이냐가 이 시기에 결정됩니다. 청소년기는 이후에 올 성숙한 사람들이 누릴 영적 권위와 능력을 소유하여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느냐 아니면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 그냥 살아가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시기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그의 신앙 고백으로 말미암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그는 반석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서 하실 비전을 얻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얻는 것이 절대로 중요합니다. 이것이 소명이며, 이 약속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룰 변치 않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약속을 얻기 위해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가혹한 청소년기를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두 가지 전혀 상반된 길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그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으르고 무지하면 실패할 것이고 신실하고 열정적이면 성공할 것입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이 과정도 다양하고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좁고 융통성이 없는 막힌 길이라는 점입니다. 사면이 보이지 않고 전혀 생소하고 낯설기만 한 길입니다. 그래서 초행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초행길에 하나님은 이정표를 두시고 지도자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위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릅니다. 예수님과 바리세인 지도자들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인데 예수님은 본 것을 말하고 바리세인들은 보지 못한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바라세인들은 일반적이고 관념적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러한 두 가지 지도자가 있습니다.

일반적이고 관념적인 지도자의 말은 무척 타당해 보입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핏 모순을 찾을 수 없고 흠을 잡을 것이 없는 듯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실제로 문제가 닥쳤을 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의 일은 모두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자택일(alternative)의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문제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갈등이 생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이 맞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것이 맞습니다.

바리세인들의 가르침은 원론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구체적 상황에서 항상 갈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바로 실천하면 효과가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대표적으로 병자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죄로 인한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바리세인들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점을 분명히 하였고 그 결과로 치유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실질적 지도자와 관념적 지도자와의 차이입니다. 이 두 형태의 지도자는 평소에는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만나면 확연하게 들어나는 것입니다.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그 가르침이 보편적이고 원리적이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우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통해서 배운 지도자는 그 가르침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므로 바로 적용이 됩니다. 이것이 차이점이며 주님은 후자의 경우를 우리에게 배울 것을 요구하십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을 보면 이런 점이 너무도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학위를 자랑하고 그들이 하는 말은 항상 그럴 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갈팡질팡하고 조령모개식입니다. 한치 앞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 시행착오 없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정확한 시행과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별로 볼 수 없습니다. 현장에 가면 다 알 수 있는 일인데 책상에서 머리로만으로 일을 처리함으로써 그런 실수들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것이 관념적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지도자들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경쟁만을 우선으로 하는 교육에서는 언제까지나 그런 지도자만 나올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을 칠판 앞에 모으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광야로 벌판으로 대중 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보여주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랐고, 병자들에게 나아갔습니다. 이적을 위해서 벌판으로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삶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서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이 방법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행하시는 주님의 교육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배우는 것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능력을 소유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교육법인 것입니다.

자신을 교제로 현실에서 배우는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배우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바리세인들이 배운 방법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이후 성령의 시대에 성령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과정을 위해서 주님이 미리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배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스승은 성령이시고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현실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제자이며 성령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존재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항상 동행하면서 배우고 익혔듯이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배우고 익힙니다. 영적 청소년기는 이 사실을 깨닫는 관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제 주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배우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알아야 하고 제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분명히 하여야 하겠기에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였던 것처럼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각자마다 다릅니다. 이것을 찾아내는 과정이 이 영적 청소년기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고백을 정확하게 했을 때 비로소 광야의 시험에서 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서 듣기 원하는 그 고백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이것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이 고백 위에 주님은 당신만을 위한 집을 지어주십니다. 이 노력이 없으면 당신은 실패자가 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공이란 다 그렇듯이 그 수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장봉운-
출처 :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글쓴이 : 차니미니파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