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자료

[스크랩] ☞ 청소년기(6)-원근법을 익히기

아 푸른하늘 2009. 10. 29. 22:40
화가가 풍경 그림을 그릴 때 고려하는 것이 원근법입니다.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려야만 실감이 납니다. 이처럼 작가의 시야에 들어온 사물을 그 사물의 위치에 맞는 축적을 사용해서 그려야 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근법을 무시하고 그리면 그림에 전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림을 그린 작가는 무슨 뜻으로 그렸는지 알지만 보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그림을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청소년기는 이런 알 수 없는 관념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청소년은 경험이 많지 않은 세대이므로 주로 자신의 안목으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풍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렇게 판단하며 그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요구합니다.

일방적 사고와 그 사고를 관철하려는 의욕이 강한 시기가 청소년기입니다. 그래서 고집이 센 시기이고 남의 말은 잘 들으려고 하지 않지요. 선생님을 비롯한 몇 명의 지식의 원천이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히 비판의식이 강한 사람의 경우 이 점이 심각합니다.

영적 청소년에 속한 사람의 특징도 이와 같아서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보려고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김으로써 은혜를 받았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권합니다. 믿음의 분량이나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그 방식을 고집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다 자신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방법이고 올바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법을 받아들이기에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칠 믿음을 얻기까지 그는 여러 번의 실수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은 아직 없었습니다. 명령에 순종하여 본토를 버리고 가나안으로 나올 믿음은 있었지만 그 땅에 기근이 생기자 그는 이집트로 옮겨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가나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그에게는 아직 그런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그는 조롱을 당합니다. 그 후 아들을 얻을 약속을 받았지만 그는 25년을 기다릴 믿음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 실수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오늘날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정말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가던 때에 비로소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정상의 믿음을 가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다 큰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맡기는 믿음에는 강하지만 행동하는 믿음에는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라보는 믿음은 있지만 물위에 발을 내딛는 믿음은 약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믿음은 강하지만 병고침의 믿음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양한 믿음과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지만 청소년기에 속한 사람은 이런 부분을 제대로 구별할 줄 모릅니다.

누구나 성숙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것이 올바른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아직 그런 원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성향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원숙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취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 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청소년기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청소년기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타인의 안목을 빌릴 줄 모르는 것이지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일방적입니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배려하는 부분이 약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강압적이고 일방적입니다.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유약한 것으로 여겨지고 타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우유부단하다고 단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여 그들이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이 영적인 일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대로 적용할 것을 강요합니다. 따라하지 못하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요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믿음이 없어서 그 요구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갈등합니다. 받아들일 만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입장도 되지 못하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순종하지 못한다고 다그치므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따르지만 기쁨도 없고 평안도 없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지도자는 좋은 일이라면 사람들을 강제라도 끌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제로 권합니다. 헌금을 반 강제로 권하거나 억지로 작정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강제로라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억지로 권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말로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마음의 갈등과 시험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시험을 당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님은 99명이 행복해지고 1명이 불행해진다면 그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100명의 불행한 속에서 1명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런 방법을 사용하셨겠지만 1명이라도 불행해지는 일이 일어난다면 결코 그 방법을 사용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소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멧돌을 목에 걸고 물에 들어가는 격입니다.

성숙한 지도자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맞는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즘 흔히 말하는 ‘눈높이 교육’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입니다.

성숙으로 향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목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만 청소년기에 속한 사람은 이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자아가 발달하고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인 이 때에는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그런 시기이지만 청소년기를 벗어날 무렵이 되면 이 정체성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 확고한 자의식은 고집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고 자기에게 도취되는 ‘나르시서스 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 자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원근법 익히기”입니다. 사물의 위치와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과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만 독단적인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지 않으며 믿음도 같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분량도 다르고 색깔도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금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이것은 실패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인데 자신도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을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처지를 경험함으로써 다양한 입장들을 이해하게 되고 힘든 사람들을 곁에서 보게 됨으로써 그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여야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되고 그래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보는 눈을 얻게 됩니다.

영의 원근법은 성숙한 사람이 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것은 어느 한 날에 갑자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얻어지는 능력입니다. 청소년기는 이 걸음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장봉운-
출처 :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글쓴이 : 차니미니파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