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있어요

[스크랩] 복제인간도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아 푸른하늘 2010. 7. 6. 17:46

복제인간도 구원 받을 수 있는가?
글쓴이: 최성호


지난 1월말에 미국과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불임치료 과학자들이 앞으로 1~2년 안에 불임치료 목적으로 복제인간을 탄생시키겠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나는 이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속히 그 위험하고 비인도적인 계획을 철회할 것을 간절히 바란다. 복제양 돌리는 347개의 복제 배아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정상 출산으로 태어난 경우이다. 현재 복제된 동물 가운데 95%가 임신 중에 죽었으며 출생에 성공한 복제 동물도 대부분 출생 직후 죽거나 심각한 기형을 보이고 있다. 이 통계는 사람에게고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복제 인간을 한 명 태어나게 하기 위해 몇 명의 예비인간들이 희생되어야 하며, 대리모는 몇 명이 동원되고 그 중 몇 명이나 임산부로서의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겪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런 모험을 쉽사리 멈출 것 같지 않고, 결국은 복제 인간이 우리들 곁에 서게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복제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특히 교회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들이 찾아와 세례 받기를 청하면 세례를 줄 것인가? 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SF 영화 속의 문제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1)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복제인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복제인간도 참 인간으로서 존엄한가?"라는 질문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연관되어있다. 복제인간도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라면 교회는 당연히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을 존중하며, 신앙을 고백할 때 세례를 베풀고, 기꺼이 형제로 받아들여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만일 복제인간이 구원받을 수 없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할 가짜 인간(Pseudo-Human), 도구 인간(Tool- Human) 혹은 종속 인간(Sub-Human)으로 취급당해서 장기 공급이나 실험 대상에 쓰이고 버려진다 해도 별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복제인간의 인권과 직결되어 있는 신학적 질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단지 신학적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흥밋거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 앞에 나타날 복제 인간과 관련된 제반 윤리적 문제들과 목회신학적 태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문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만일 복제인간도 우리들(양성 생식으로 태어난 자연 출생자들)처럼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인간 복제행위 자체도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으로 자칫 오해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게 된 복제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복제행위의 윤리적 정당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기가 나중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해도 성폭력 행위 자체는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인성(人性, 인간됨)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구원이 '하나님과의 화해'일진대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 행위이고, 그리고 성경은 이 가능성은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복제양 돌리가 어떤 방식으로 태어났건 한 마리의 괴물이 아니고 양인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복제 인간도 유전 생물학적 그리고 생리적 측면에서 한 인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드웨어, 즉 신체적 측면에서 복제인간도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고 제외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태어난 양식(mode of becoming)이 양성생식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가 존재하는 양식(mode of being)으로서의 '인간됨(Humanness)'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양성생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나셨지만 그의 완전한 인성 혹은 '인간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그들의 영혼의 문제이다. 신학적으로 과연 '영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간단한 것이 아니고, 히브리어 구약 성경과 헬라어 신약 성경에서도 그 뉘앙스가 서로 다르다. 또 영혼의 기원에 관한 교리도 교파마다 틀리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전통적 기독교는 영혼이란 인간이 수태될 때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 주어지는, 주체적인 자아의 중심을 차지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 무엇이라고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도 현재와 같은 생명과학 시대에는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 여러 곳의 실험실에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형성된 수정란 혹은 배아들이 수없이 많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것들에게 주입된 영혼도 함께 냉동 보관되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영혼은 한 시점에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과정적 환경과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형성되는 개체 인격의 총체적 파일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시103:1)
여기서 '내 영혼'이란 말이 병렬법에 의해서 '내 속에 있는 (모든)것들'로 다시 설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영혼이란 거의 대명사와 같은 개념으로서 인격의 '비(非)물질'(소프트웨어)적인 파일의 총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결코 영혼과 육체를 나눌 수 없는 전인적(holistic person)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느 시점에 '영혼을 갖는다(have a soul)'기 보다는 '영혼이 된다(become a living soul)'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Man became a living soul)" (창2:7)

복제 인간 문제가 처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초기에는 일부 흥분한 기독교인들이나 신학자들은 복제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복사 제조된 생물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영혼도 없고 따라서 구원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속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복제인간(Human Clone)과 복사인간(Human Copy)을 혼돈해서는 안된다. 최근에 개봉된 "제6일(The Sixth Day)" 등과 같은 SF 영화들에 나오는 인간들은 복제인간이 아니라 복사인간이다. 복제인간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무성생식의 방법으로 원본 인간과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존재가 신생아의 상태로 태어난 것'을 말한다. 갓난아기로부터 시작하니까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유한 시간을 소유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시간차를 두고 태어나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도 일란성 쌍둥이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하거나, 반쪽짜리 영혼만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복사인간은 원본과 동일한 유전자뿐만 아니라 동일한 기억, 성격 등 원본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격적 파일과 동일한 파일을 지닌 인간, 그야말로 Copy이다. 갓난아이로 태어나는(born) 것이 아니라 원본 인간과 같은 상태의 나이로 제작(made)되는 것이다. 이런 복사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고 아마도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기에 영혼의 복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복제인간은 원본 인간과 유전자만 같을 뿐, 별개의 영혼, 별개의 인격으로 성장할 것이다. DNA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설계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같은 설계도를 가지고 집을 지어도 여름에 지은 집과 겨울에 지은 집이 다른 법이다. 갓난아이로 태어나는 복제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들 속에서 또 다른 생령(living soul)이 될 것이다.

(3) 복제인간과 하나님의 형상
복제인간에게도 하나님 형상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성서 신학적, 조직 신학적 해석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앞서 말한 영혼 문제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종교개혁 이후 신학자들은 은총과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히 인간이 타락한 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실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앙을 가지지 않은 원본 인간(original)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없는 상태인데, 그의 복제 인간의 그것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기는 매 한가지가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그와 결부된 인간의 존엄성을 그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20세기 개혁주의 신학의 주된 흐름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이 소유한 어떤 특이한 요소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며 공동체적(혹은 사회적) 형상, 즉 인류 생명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로서 '개방된 그리스도 형상(Imago Christi)'으로 이해하는 추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향해서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복제 인간도 그 목표를 지향하는 인류 공동체에서 제외시킬 결정적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재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4) 은총의 접근 가능성
구원의 가능성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하심의 접근 가능성(Accessability of God's Relationship to Man)'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이 접근 가능성에 대해 인간적 형식 논리로써 어떠한 제한도 가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이 태어나게 된 과정의 정당성과, 그 태어난 인간 자체에 대한 관계하심을 별개의 문제로 다루셨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과정이나 사연을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그에게도 할례 언약에 동참할 수 있는 복을 허락하셨다.

베레스, 솔로몬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록 인간 복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행위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복제를 통해 태어난 사람까지 은총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실 것이라는 생각은 비성서적 예단이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듯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양성생식 아니라 심지어 이스라엘의 혈통을 타고난 인간이라도 버리시고, 마음먹으시면 들판의 돌멩이로도 아브라함 자손이 되게 하실 하나님이심을 결코 잊어선 안될 것이다.

(5) 맺는 말
복제인간도 생물학적으로 인간임에 틀림없고, 그도 살아 있는 영혼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한다면, 비록 그가 존재하게 된 과정이 악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결코 구원하실 수 없다거나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우리들은 그들도 같은 인류로, 형제로 받아들이고, 교회는 신앙을 고백하는 그들에게 기꺼이 세례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우리가 직면할지 모르는 진정한 재앙은 복제인간의 출현이라기보다 유전자 변형인간의 출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이 스스로 그 종자를 바꾼 인간 - 그들을 과연 어느 선까지 인간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또한 그들이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그 때가 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최성호/서울의대를 나와 외과 전문의로서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 응암 장로교회에서 청년부 담당 전도사로 사역 중이며 베데스다 기독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金鐘日牧師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