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스크랩]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대로

아 푸른하늘 2007. 11. 18. 13:22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대로

 

우리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몸으로 헌신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란, 몸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삶이요, 주님의 뜻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나타내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건강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건강해집니다. 환자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환자가 됩니다. 진실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진실해집니다. 술고래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술주정뱅이가 됩니다. 부자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부자가 됩니다. 거지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거지가 됩니다. 영웅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영웅이 됩니다. 겁쟁이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겁쟁이가 됩니다. 성공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면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월터 데이비스는 소아마비였습니다. 주위에는 월터가 걷지도 못할 것이라고 비웃었지만,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월터의 마음에 창조적인 믿음을 심어 주었고, 어머니는 그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월터는 나약한 두 다리를 가졌지만 걸을 수가 있었고, 결국에는 뛸 수도 있게 되어서 높이뛰기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소아마비가 높이뛰기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솔맨이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된 젊은 나이에 그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해줍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소.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그녀는 지금 임신중입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에도 죄스럽습니다.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
개월을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하십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맙니까 ? 천금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십시다. 그러면서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둘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병은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에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에 대개 자비하신 분으로, 고난당하시는 얼굴로 그리는데, 이분은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서 수백만 장이나 인쇄되었고 오늘도 많은 가정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개월이 어딥니까 ? 하루가 어딥니까 ? 한 달란트가 어디냐 그 말씀입니다. 모름지기 감사하며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
"아무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빌립보서 4: 6-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이 '실상'이란 말은 헬라어로 '휴포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이 말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헬라의 한 여인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는데 토지문제가 잘못되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번 재판에 실패를 한 이 여인이 알렉산드리아의 고등법원에 상소하기 위해 모든 법적 증거서류를 모아서 돌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닫아 자기집의 노예를 시켜서 고등법원으로 보냈는데, 이 노예가 가는 도중 숙박하던 여인숙에 불이 나 모두 불에 타 죽어 버렸습니다. 그 사건이후 2천년이 지난 뒤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이 돌항아릭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그때의 모든 문서와 함께 재판장에게 보내는 한 장의 긴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재판장님으로 하여금 내 고소가 참된 것임을 알게 하고자 여기에 내 휴포스타시스를 보내드립니다."라고 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휴포타시스란 바로 증거물에 대한 확실한 신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가지고 그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실현이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는가 하면 현재적 성취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입니다.

 


요셉을 생각해 본다
요셉은 부자집 열한번째 귀동자였다. 배다른 형 열 명이 질시 공모하여 애굽에 노에로 팔았다. 이것은 세상에서 받은 최초의 배신이었으며 도살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경건된 미소년 요셉은 애굽 제국의 경호 실장 보디발의 비서장으로 승진 출세했다. 보디발의 처는 애굽의 급미인 귀부인이었으나 그녀는 요셉을 연모하여 어느날은 육체로 `죽음을 주든지 사랑을 달라`고 도전을 해왔다. 이것은 요셉의 생애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요 불같은 시험이었다. 요셉은 눈을 찔끔 감고 단 한번만 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호히 뿌리쳤더니 여인의 복수 심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다. 산순교자인 셈이다.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던 청년들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입장이 됐을 때는 정욕에 쉽게 무릎을 끓어 버린다. 요셉을 배우자.

 


끝을 생각하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라고 시편 기자는 기도하였다. 자기의 남은 시간들을 소중히 맞이 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라는 뜻이다. 모든 시간은 끝이 있다. 하루도 끝이 있고 1년도 섣달그믐날이 있으며 한 생애도 끝나는 시간이 있다. 프란시스코 자비엘이라고 하면 스페인 사람으로서 포루투갈왕 요한3세의 위촉으로 인도, 쎄일론, 말레제국 그리고 일본까지 선교했던 동양 전도의 선구자였다. 그는 1553년 12월 3일 숨을 거두었는데 유언으로써 포루투갈왕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폐하께서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시간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그 끝날의 계산을 위하여 더욱 양심적인 국왕이 되며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하셔서 부끄러움이 없는 총결산의 시간을 맞이하도록 준비하십시요.`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본문: 전도서 7:1-14

인격과 겉치레
1절: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정직과 성실한 인격을 가진 자로서 머리를 들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자이길 원하는가 아니면 돈으로 살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비양심적이고 믿지 못할 사람으로 여겨지는 자이길 원하는가?

고통의 끝과 고통의 시작
2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에 가지는 분위기는 흥분되고 포용적이다. 인생의 덧없음이나 인간의 한계와 같은 것에 마음을 둘 시기가 아니다. 기쁨과 소망을 극도로 표출하는 때이며, 인생의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때이다.
3-4절: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그러나 애통하는 집에서의 분위기는 정반대이다. 그곳은 생각하게 하는 곳이고 현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 사실들을 떨쳐버리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일 뿐이며 그곳에서만큼 더 현실에 직면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 현실을 시 90편은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시 90:9-12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의 근심은 마음의 기쁨을 열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요 가장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길을 예비해 준다. 그래서 3절에 대한 GNB의 번역은 이 구절의 메시지의 정곡을 전하고 있다: Sorrow is better than laughter; it may sadden your face, but it sharpens your understanding. 인생의 소망도 인생의 현실을 직면한 후에야 참되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곧 인생의 장막인 것을 아는 자만이 영원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진리의 상처
5절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지혜자의 면전에 있는 것은 항상 편안한 자리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을 괴롭게 할 수 있는 진리들도 그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잠 27:6 "친구의 통책(痛責: 심하게 꾸짖음, 상처를 줌)은 충성(忠誠/faithful)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반면 우매자는 절대로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를 칭찬하는 노래를 더 하려하는 것이 그들이다. 진리로 인한 아픔은 진리가 우리의 병든 몸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진리의 상처는 우리의 상처부위를 알려주는 것이지 또 다른 상처를 입힌 결과가 아니다. 진리의 치료함을 겪는 자에겐 일절 깨끗한 회복이 선물로 주어진다. 건강한 인생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의 제 2의 출발이 된다.
고후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 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 을 나타내었느니라(See what God did with this sadness of yours: how earnest it has made you, how eager to prove your innocence! Such indignation, such alarm, such feelings, such devotion, such readiness to punish wrongdoing! You have shown yourselves to be without fault in the whole matter)."

진지함을 회복하라
6절: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시끄럽고 자멸적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Empty barrels make most noise). 그 웃음에 동참하여 같이 떠들겠는가? 진지함을 상실한 시대에서 하나님 앞에 진지한 자세를 회복하라.

끝까지 지혜를 지키라
7절: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아무도 고의로 자기 자신을 우습게 만들려 하는 자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의 모습이 어떨 것인지를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누구도 시험(temptation)에서 예외인자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기도를 알려주시지 않으셨는가. 마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인내로 살아가라
8-9절: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우리는 의욕(enthusiasm)으로 일할 것이 아니라 인내로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쉽게 감정의 기복을 나타내고 쉽게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감정을 품는 것은 우매자의 특징이다.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약 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
10절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GNB: Never ask, "Oh, why were things so much better in the old days?" It's not an intelligent question)". '지난날의 좋은 시절'을 한숨쉬며 추억하는 것은 배로 비현실적인 것이다. 현실에 대한 행동을 막을 뿐만 아니라 바른 생각까지도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지난날의 좋은 시절은 또한 지난날의 생각하고 싶지 않는 시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 아래 무엇이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그 때라고 좋고 지금이라고 항상 더 나쁜가? 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지혜가 들릴 때에 지혜를 품으라
11절: "지혜는 유업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심지어 지혜가 줄 수 있는 도움에도 한계가 있다. 햇빛을 볼 수 있는 생애가 남아있는 동안 지혜를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유익을 누리는 것이 이 땅에 가질 수 있는 복락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인생의 보장을 맡기라
12절: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인생에 안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혜요 다른 하나는 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가난함'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모든 땅의 소유를 포기해야만 생명의 비밀을 발견할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으셨다. 그럴 것이면 그리스도인들은 다 거지여야 하지 않겠는가? 물질을 다 버리지 않고 어찌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결코 '다 팔아라'고 하지 않으셨다. 소유를 파는 것과 관련된 얘기는 신약 성경에 4번 나온다 -- 마 19:21; 눅 12:33; 행 2:45 그리고 행 5:1이다.
이들이 소유를 팔게 된 동기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지 못한 소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되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의 소유는 하늘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삭개오의 얘기 가운데도 그가 불의한 세리였지만 소유를 다 내어놓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근본적인 인생의 방향 변화를 표현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그리했을 것이다.
이처럼 지혜는 우리가 가는 인생 길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혜자에게 부를 맡기시길 기뻐하신다. 전 2: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그런데 전도서 2:26의 결론은 '이것도 헛되니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이다. 그러므로 결국의 지혜는 13-14절이 말하는 메시지에 담겨있다.

참 지혜
13-14절: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 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고 앞서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지혜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만지는 손만 아니라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는 하나님의 연장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손은 그의 자녀로 불필요한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으신다. ('My Father's hand will never cause His child a needless tear'--William Freeman). 사 49:14-15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놓지 않는 손길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할진대 곤고한 때에 더욱 주의 목적을 생각하고 우리의 생각을 주님의 지혜 앞에 굴복시키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던중 오해의 글이 있어 올립니다.
신학원을 비방하는 글과 이야기를 들은 바가 저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공부하면서 참많은 오해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비유풀이를 가지고 많이들 이단이라고 얘기해 주더군요 문자로만 풀어야한다면서요
그러나 성경전체가 다 비유가 아니라 비밀로 감추인 부분들이 있는데
그 내용이 비유입니다.
그럼 저도 묻고 싶습니다.
이런 성구들은 문자로 어떻게 알수있나요? 답해주시길.....
사55:12 ... 산들과 작은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나무가 손바닥을 칠것이며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이름으로 귀신을 �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계13:1 ...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면류관
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나무도 손이 있나요?
나무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무가 손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신건가요?
예수님 믿는 자는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가 없다는데
성경을 문자로 푸는 믿음좋은 운영장님께서 한번 독을 마셔보시는건 어떠신지요.
바다에서 7머리 10뿔짐승이 나온다는데 이 짐승이 뭔가요?
문자로 확실하게 좀 알려주셔요.
그렇지 못하시다면 함부로 남을 비방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만일 진리라면 그 결과는 어찌하시렵니까?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본문 : 잠언 16;18∼21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옛날 어떤 부잣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식구들은 모두 글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잣집 주인은 이번에는 아들로 하여금 글씨를 꼭 깨우치게 하리라 다짐하고는 아들에게 가정교사를 붙여 글씨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가정교사는 먼저 한 획을 가로로 그으며 아들에게 써보도록 한 뒤 “이것이 ‘한 일(一)’이란 글자입니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음으로 두 획을 긋게 하고는 “이것이 ‘두 이(二)’라는 글자입니다”고 가르쳤습니다. 다음으로 ‘석 삼(三)’이란 글씨를 가르치는 순간 아들은 기뻐하며 붓을 팽개치고는 아버지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버지, 이젠 글자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가정교사도 필요없습니다.혼자서도 다 알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고는 가정교사를 내보내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는 집안의 잔치가 있어 아들의 글솜씨도 볼 겸 초청장을 쓰라고 아들에게 시켰습니다. 아침부터 아들은 아버지 명령에 꼼짝도 않고 계속 방안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저녁 무렵 기다려도 아들이 나오지 않자 아들의 방에 들어간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이 투덜댑니다.“왜 하필이면 ‘만(萬)’씨인지 모르겠네. 아직 5백획밖에 쓰지 못했단 말이에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일컬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속뜻을 그때마다 하나씩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깨우칩니다. 그리고는 또 잊어버리곤 합니다. 어떨 때는 몇번 경험해보곤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겠다고 자랑하며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하나를 통해 둘, 셋을 알게 되는 일은 참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런 지혜가 있게 되길 소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두 개 깨우쳤다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과 같이 여기는 ‘영적 교만’입니다. 자신의 잣대로 다른 이들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잠 16:18,20). 오늘 하루도 일어섰다고 할 때 조심합시다(고전 10:12). 나의 자만으로 주님의 자비와 그 뜻을 가리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기도: 내 안에 나를 일으키려는 악한 계획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믿음으로 지혜롭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싸울 생각을 없애버리는 책
중국 남경에서 선교사들이 일본군 병사들에게 신약성경을 나누어주자, 하루는 일본군 장교 한 사람이 이들에게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더 이상 내 부하들에게 성경책을 주지 마시오. 어떻게 된 셈인지 이 책을 읽기만 하면 아무도 싸우려도 하지 않는단 말이오 !"

 

생각
 
 오래 전에 서반아왕 가운데 페르난디 5세라고 하는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이 어떤 점장이에게서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고 하는 곳에 아예 가지 마세요. 마드리갈에서 장차 왕은 죽게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는 왕의 별궁이 있었는데 왕은 무서워서 자기의 좋은 별궁을 지어놓고도 21년 동안 거기를 한번도 못갔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반아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떤 조그만 촌락에서 하룻밤 자면서 그만 병이 났다. 왕은 이 지방이 어떤 지방이냐고 물어 보았다. 옆에 있던 신하가 "이 곳은 마드갈레입니다"고 대답했다. 마드리갈과 비슷했다. 사실은 마드리갈이 아니고 그와 비슷한 것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왕은 "아이고 나는 죽겠구나" 하더니 며칠이 안 되어 죽었다고 한다. 인생의 실패와 성공, 죽음과 삶의 갈림길은 언제나 자기의 생각 여하에 달려 있다.

 

 생각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1초에 340M를 움직이는 소리가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보다 더 빠른 음속 비행기가 월터 부케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그후 빛은 1초에 18만 6천 마일 즉 지구를 1초에 7바퀴반을 도는 무서운 빠르기임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입실론은 빛의 수만배가 빠르며, 입자는 입실론보다 수억배가 빠르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은 생각이라고 수정하게 되었다. 생각은 1초에도 광활한 우주를 수십 바퀴나 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무서운 파괴력은 항상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생각도 그것은 하나의 원인(씨앗)이 되고 어떤 생각도 그것은 하나의 결과(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옆을 보니 "POISON"(독약이라는 뜻)이라고 써 있었다. 갑자기 그는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으로 달렸다. 이제 곧 창자가 녹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진단을 마치고 또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웃으며"POISON"은 영어로는 독약이지만 불어로는 낚시금지라 는 말이라고 했다.
 독약이 그를 아프게 하였다가 치료가 그를 안 아프게 한 것이 아니고, 그를 아프게 하였던 것도, 안 아프게 하였던 것도 모두 생각이었다.


 생각
 
 하나님께서는 하루에도 수 없이 우리에게 좋은 꿈과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젼을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망각해 버리거나 소멸시켜버리고 만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는 말하기를 "인간은 평생에 자신의 두뇌기능을 10% 밖에 쓰지 못하고 나머지 90%는 개발하지 못하고 죽어간다"고 하였다. 최근에 어느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하루 동안에 10만여 가지의 새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그것을 모두 묵인하기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생각
 
 로마의 시인이었던 버질은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에머슨도 "모든 사람의 열쇠는 그의 생각이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의 됨됨이는 하루 종일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생각
 
 사람의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행동은 생각에 의하여 나오는 것이다. 미국의 수필가 렐프 웰드 에머슨은 다음과 같이 생각을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하루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노만 빈센트 피일은 "생각을 바꾸면서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성경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잠언23:7)이라고 하였다.
 사무엘 스마일즈는 "생각을 심으십시요.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행동을 심으십시요. 습관을 거둘 것입니다.
 습관을 심으십시요. 성격을 거둘 것입니다. 성격을 심으십시요. 신의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큰 생각을 기르십시요. 왜냐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생각 이상으로 오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생각과 건강
 
 누구든지 자기가 병들거나 기운이 없어진 사람으로 생각하면 그 질병의 대상이 될 것이요, 건강을 생각하고, 건강한 줄로 확신하는 때에는,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끔 이런 경험을 한다. 차에서 내릴 때에 짐 나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무거운 짐을 가지고 내리게 되는데, 이런 때는 무거운 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 늠름하게 내리라고 상상한다. 그러면 사실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짐을 운반한다. 그러면 이것이 자기 감응일까? 물론 그렇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게 암시를 받는다. 이에 의하여 승리 혹은 실패하여, 건강 혹은 병약하게 된다. 어찌 파괴적인 것 대신에 건설적인 것을 암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우리의 신체의 각 기관이 건장하다고 생각하면 그 기관들은 건강함을 보이노라고 얼굴빛이 붉어지고, 그 붉어진 것이 혈관을 통하여 건강하게 하는 피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기관이 약하다 생각하면, 공포로 인하여 얼굴 빛이 창백하여져서 피가 없는 기관들은 결국 혈액의 부족으로 인하여 병이 들게 될 것이다.


생각과 실천

 남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던 아주 심약하고 내성적인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소년은 후에 영국을 대표하는 문인, 웅변가, 달변가로 성장했다.
 그의 이름은 버나드 쇼. 남의 집에도 못갈 만큼 부끄러워하던 아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1876년 그는 '작은 생각'을 '일생일대'의 전기'로 삼았다. 바로 "내 인생은 한번뿐이다. 그리고 나의 것이다. 과감히 내 자신을 알리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 생각을 실천했고 세계적 인물이 되었다. 작은 생각이 인생을 바꿀 때가 있다.


생각없는 말 한마디
 
 어느 날 매우 뚱뚱한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했읍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농담을 한 마디 했읍니다. "어서 앉아. 다리가 너무너무 수고했겠다!" 이 말을 입 밖에 내놓은 그 즉시 나는 아차 실수를 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읍니다. 그렇지만 일단 내뱉은 말을 어떻게 주워 담을 수 있겠읍니까? 그 직후에 나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자위할 수도 있었읍니다. "캐롤, 괜찮아.(마음이 썩 불편한 걸!) 어쩌다 한번 그런 생각없는 말을 한 걸 가지고 뭘 그래. (어쩌다가 한 게 아니라 자주 한단 말이야!)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누가 그렇대?) 넌 자아를 사랑해야 해. (그래. 그건 알아. 하지만 어떻게 ?)" 솔직히 말해서 그런 식의 자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범한 실수를 계속 생각해 보았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 해달라고 기도하며, 또 그 말 때문에 내 마음 속에 생긴 죄책감과 무거운 감정을 없애 주시기를 구한 후, 내가 어떻게 했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내 생각을 고정시키면, 하나님께서는 나로 용납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시며 나의 나 된 것을 인하여 기쁨까지도 맛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
 
 어떤 사람이 꿈 가운데 하늘 나라에 가 보았읍니다. 하늘 나라에 가보니 천사가 큰 책을 그의 앞에 갔다 놓습니다. "이것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 보니까 "그 책 가운데는 당신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대답했읍니다. 첫 장을 들추니까 잔 글자로 가득 씌어져 있는 것 이 보였읍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하고 물으니까 천사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세상에 살 때 행동으로 지은 죄입니다"라고 합니다. 그 다음 둘째 장을 들쳐보았읍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첫 장보다 더 잔글씨로 가득 씌어져 있었읍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하고 물어 보니까 천사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 살 때 말로 지은 죄들 입니다"라고 합니다. 말로 지은 죄는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 더 많은 모양입니다. 그 다음에 세째 장을 들여다 보니까 둘째 장보다 더 잔 글씨로 더 많이 기록해 놓았읍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천사의 대답이 "이것은 당신이 마음 가운데서 생각으로 지은 죄입니다"라고 했읍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는 더 많습니다. 그리고 한 장을 또 들추어 보니 이것은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고 새까맣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까 "이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하는 것이 천사의 대답이었읍니다.

 

 생각은 깊게
 
 미국 독립전쟁 때 두 팔을 잃어버린 상이군인이 뉴잉글랜드에 살고 있었다. 그는 나룻배로 사람들을 태워 나르며 겨우 생계를 잇고 있었다. 그는 노를 저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발로 움직이는 페달을 장치해 나룻배를 움직였다.
 어느 날 풀턴이라는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배 밑바닥에서 증기선을 구상했고 결국 증기선을 만들었다. 자동차의 발명도 상을 당한 어머니에게 빨리 달려가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명은 사소한 것을 깊이있게 생각하는 데서 발전 한다.
 


 생각은 밝게

 현실을 직시해야 하되 너무 비관적이지 말자. 오른쪽 다리가 약간 마비되는 듯한 증세에 병적인 공포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늘 「이러다가 한 순간에 마비될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어느날 부인과 함께 모임에 참석했는데 식사 도중 오른쪽 다리를 슬쩍 꼬집어보던 그는 「결국 내 다리가 마비되고 말았어」라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부인이 귓속말을 건넸다. 「여보, 지금 꼬집고 있는 것은 당신 다리가 아니라 제 다리예요」

 

 생각의 차이
 
 세계적인 명설교자인 로버트 슐러가 연말에 어느 탄광을 방문했다. 광원들의 얼굴은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눈만 반짝이는 광원들이 불쌍하게 여겨져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날마다 이 굴 속에서 석탄을 캐는 단조로운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러자 한 광원이 석탄 덩어리 하나를 집어들고 명랑하게 말했다. 『제가 캐는 이 석탄이 빛이 되고,동력이 되고 열이 되어 가정과 공장,사회와 국가를 움직입니다. 그래서 제 일이 즐거워요』
 


 생각할 것, 생각하지 말 것
 
 오늘 하룻동안에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만 생각하겠습니다.
 슬픔을 주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나의 장점과 진실만을 생각하겠습니다.
 단점과 거짓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 주위의 축복들만 생각 하겠습니다.
 거절당한 것이나 불행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우정과 미덕을 생각 하겠습니다.
 잘못과 헛점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기분 좋았던 날들만 생각하겠습니다.
 한숨과 고통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 앞에 있는 소망들을 생각하겠습니다.
 뒤에 남은 찌꺼기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룻동안에는 내가 베풀수 있는 친절만 생각 하겠습니다.
 나 자신만 돌아보려는 생각은 하지 하겠습니다.
 


생각할 시간
 남과 대화할 때 항상 자기과시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자기성찰에 숙련된 아주 겸손한 사람과 대화하게 되었다. 「면도하는 동안 저는 외국어를 공부합니다. 식사하면서도 하루일과를 점검하지요. 일터에서는 정신없이 보냅니다. 사람들이 저를 놔주지 않아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니까요.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지요」 버릇처럼 그는 교만한 어조로 자기를 과시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겸손한 사람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생각할 시간을 언제쯤 갖습니까」

 

 생기를 잃어 버린 신학생
 롬 11:36; 히 2:10-12; 사 44:24; 롬 9:5
 
 어떤 신학생이 자포자기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갑작스레 그렇게 된것이 아니다. 아주 서서히 열정이 식어 버리고 믿음이 악해지고 기독교적인 실천에 대한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영혼의 샘은 고갈되어 버렸고 총기를 잃은 눈은 침울하게 내리 깔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악마가 그를 공격하여 점령해버린 것인가? 아니다. 지나치게 공부를 많이 하여 회의에 빠진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목회보다 더 매력적인 어떤 일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처럼 극적인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학생이 그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는 하나님에 관해 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는 결국 찬양을 잃어 버렸고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미국인의 82%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돈이라고 한다.
동시에 미국인의 53%가 최고로 걱정하는 것도 돈이라고 한다.


 감옥의 차이

  감옥과 수도원의 생활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랍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 옥에서는 대개 불평만이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나간답니다.
  사랑과 함께 감사하는 생활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덕목입니다.

 

거대하고 멋진

  거대하고 멋진 빌딩 앞에 그랜져 승용차가 한대가 멈췄습니다.
비서인듯 시중드는 사람 둘이 차에서 내리더니 그 건물에 있는 최고급 요리집에서 풍성하고 성대한 식사를 차로 운반하여 왔습니다.
  이 모습을 아까부터 저쪽 가로수 아래서 보고 있던 부랑자가 중얼거렸습니다.
 "와~! 정말 대단하군! 저사람은 도대체 무슨 복으로 저 고급  자동차에 음식까지 날라다 먹나? 얼굴이나 한번 보자!"하고서 가까이 가 차 안을 들여다 봤더니 자동차 안의 부자는
하반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랑자는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그것은 조금 불편한 것일뿐!
그리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은 멀리 훨훨~~!! 

 

거울 앞에서 짖어대는 강아지
약 1:23; 시 37:1,7,8; 고후 12:20
 자그마한 테리어종 강아지 한  마리가 큰 거울 앞에서 으르렁거리며 서있었다. 자기와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또 다른 개를보고 사납게 짖어댔으나 거울을 치우자 그 개는 조용히 가버렸다.
 때로는 어지러운 세상이 맘에 안  들어 불평하지만, 이는 바로 자신의 울적하고 마땅찮은 기분의  반영이 아니겠는가? 만약 노란 안경을쓰고 세상을 본다면 황달에 걸린 것처럼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일 것이요, 장미빛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본다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
이다.


자기생각포기
    이스라엘사람들의 회당에 가서 예배에 참예한 적이 있다. 들어갈 때에 주의를 준다. 연필을 꺼내 쓰든가 종이를 꺼내 쓰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 내가 공부하러 간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리 있겠나? "Why not?"하고 물었더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공부하는 시간이 아닙니다"한다. 나는 아주 충격을 받았다.
    그저 늘 얘기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도 예배드릴 때에 뭘 노트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 쓰고 둘 놓친다. 뭘 쓰는 동안에 사실은 똑바로 들을 수가 없다. 또 목사인 내 개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만 말씀 들으시고 자꾸 잊어버리고 해야 그 다음에도 내가 얘기할 것이 있지, 그렇지 않은가? 뭘 다 기억해두려고 하나? 두고두고 들을 것인데, 죽을 때까지 들을 것인데... 새벽기도까지 나오는 분을 기준해서 말하자면, 일 년에 설교만 무려 400번 듣는다. 앞으로 십년 더 살면 4000번 들을 것이다. 그런데 기록을 하나? 오로지 날 똑바로 쳐다보고, 집중적으로 들으라. 이게 중요한 것이다. 특별히, 내 생각에 매이지 말 것이다... 절대로 자기 생각에 매여서는 안된다. 정욕에 매이지 말고, 편견에 매이지 말고, 고정 관념에 매이지 말 것이다. 특별히 깨끗한 마음으로, 이 시간만은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같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이념
   벧전 2:9,10; 마 16:28; 막 1:15
 브루스 글레이서(Bruce Glasier)는  사회주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거두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것이다.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는 것이다. 이기적인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것이다(개인주의나 자본주의자들이 요구하는바처럼). 이 세상에서자기 혹은 자기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류의 지상 낙원을  만드려는 욕구다. 사회주의가 갖고 있는 궁극적인  도덕원리는 우리가 살면서 주어야  하고 생명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 때에야 얻을  수 있다는 인간적이며  신앙적인 원리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추구하는 바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우리가 이해하는바, 그리스도만이 이루실 수 있는 것이다.


글래드스턴의 독서열
    렘 32:33; 신 31:12; 롬 15:4; 요 20:30

  영국의 정치가  글래드스턴은 디즈레일리와  더불러 19세기의 영국의회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1833년에하원의원이 되었고,  59세 때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네 차례나 내각을조직했다.
  대단한 독서가기도 했던 그는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는데,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나는 뜻밖에 생기는 1분을 그냥 흘려 버리지 않기 위해 항상 소책자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가 읽은  책은 정치, 경제, 외교  분야의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를 비롯해 소설 등의  문학서를 애독했다.  그 이유에 대해 글래드스턴은 "소설을 읽고 시를 음미하는 것은 심신을 달래는 데 매우 유익하기때문이다."라고 피력하였다.
  그는 또 40대 후반에 고대 헬라의 시인인 호머에 관해 연구한 것을 전 3권으로 펴냈다.  이는 그의 꾸준한 독서가 밑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높은 이상주의와 평화주위를 견지한 대정치가로 알려진 그 의 정치이념도 그의 독서에 의해 배양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기독청년들의 생각과 가치관
 선후배와 고민의논 68%에 비해 목회자와는 5% 그쳐 노래방 97% 호프집 비디오방 70% 음란영화 15% 관람

  요즘, 기독교 청년들의 생각과  가치관은 실제로 어떠할까. 최근 기윤실 대학생위원회는 전국 371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회생활과 생활 스타일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생활을 묻는 질문에서는 청년부에 가장 시급한 것으로 사랑의
 공동체 회복, 비전, 경건의 훈련 순으로 꼽았으며 또 청년부에 참석하기 싫은 이유로는 인간관계가 부담스러워서, 지루해서, 과다 봉사활동순으로 응답해 청년부에 시랑이 부족하다고 답변한 것과 일관성있게 인간관계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에 따르면 기독학생들이 고민이 있을 때 대화하는 상대로  친구나 선후배가 68%를 차지한데 반해 교회나 목회자는 5%정도로 나타나 성도들을 대하는 목회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함을 암시했다.
  청년부 담임 교역자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목회자들의 개방성과 관심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으나 회의의 결정과 목회자들의 뜻과 의견이 상충될 경우에는 목회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경향으로  나타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목회자를 잘 찾지 않는 이유도 이와 관
 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목회자들은 그동안의 다소 권위적이었던 태도를 버리고 청년들이 가본 진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개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은 어떠할까. 청소년들의 생활스타일은 조사한 결과 노래방은 97%가 가본 것으로 응답했으며, 호프집과 비디오방은 70%가, 음란영화를 상영하는 3류 극장은 15%로 청년들이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또 주일날 금전을 사용함에 있어서 55%가 별로 관계 없다고 답변해 금전사용과 관련한 주일 성수개념은  희미해진 것으로 드러났으며 30%가 모르겠다고 응답, 교회에서의 가르침과 실생활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학생들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준

옛날 송나라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관상쟁이에게 가서 자기가 재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상을 좀 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 관상쟁이는 범문공을 가만히 보더니 재상이 되지 못하겠다고 해서 그는 되돌아왔다가 얼마 후에 다시 찾아가서 의원은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의원의 신분이 아주 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관상쟁이는 왜 의원이 되려 하느냐고 묻자, 도탕에 빠진 백성들을 건지기 위해서 재상이 되고 싶었는데 안된다고 하니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돕고 싶어서 의원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관상쟁이는 "당신은 재상이 되
겠소"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법문공은 어리둥절하여 "얼마전에는 안된다고 바로 당신이 말해놓고 이제와서 재상이 된다니 얻허게 된거요?" 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상쟁이는 웃으면서, 관상이란 색상이 먼저이고, 둘째는 공상이며, 세째는 심상인데, 당신의 골상은 시원치 않아 재상감이 아니지만 심상을 보니 재상이 되겠다고 설명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하면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까?" 공자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면 그는 나쁜 사람입니까?" 역시 아니라고 공자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냐고 묻자 "훌륭한 사람이 그를 훌륭하다고 하면 훌륭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들이 그를 나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를 누가 인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옳가도 인정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한다고 옳은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실 때 비로소 옳은 사람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끝을 생각하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90:12)라고 시편 기자는 기도하였다. 자기의  남은  시간들을 소중히  맞이 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라는 뜻이다.
    모든  시간은 끝이 있다. 하루도 끝이 있고 1년도 섣달그믐날이 있으며 한 생애도 끝나는 시간이 있다.

    프란시스코 자비엘이라고 하면 스페인  사람으로서 포루투갈왕 요한3세의 위촉으로 인도, 쎄일론, 말레제국  그리고 일본까지 선교했던 동양 전도의 선구자였다.
    그는 1553년 12월   3일 숨을 거두었는데 유언으로써 포루투갈왕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폐하께서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시간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그 끝날의 계산을 위하여 더욱 양심적인  국왕이 되며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하셔서 부끄러움이 없는 총결산의 시간을  맞이하도록 준비하십시요."

 

나귀 방귀에 죽은 자

 나귀 탄 여행자가 도중에서 점쟁이를 만났는데, 하는 말이
  "당신이 타고 가는 나귀가 만일 방귀를 세 번 뀌면 당신이 죽을 것이오."
  여행자는 별 미친놈의 소리를 한다고 일축했다.
  떠나가는 도중에서 나귀가 방귀를 뀌는 것이다.
  심상스럽게 생각했을 나귀 방귀  소리가 점쟁이에게 들은 말이 떠올라서,
  만약의 방비로 나귀의 똥구멍에 돌을 막았다.
  여관 가까이 갔을 때에 또 방귀를 뀌는 것이다.
  불안해 진지라 이번에는 돌을 여러 개로 틀어막았다.
  여행객은 잠이 오지 않았다.
  나귀가 무사한지 궁금하여 나가서 똥구멍을 들여다보는데, 때마침 방귀를
  뀌는 바람에 터져 나오는 돌들에 얼굴과 머리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14:31)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눅24:38)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롬14:23)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1:6)

 

 나의 마음
    롬 7:21-24; 잠 14:10; 렘 17:5-9

  나의 마음은 끊임없이 방황하는  불안정한 마음이다.  이러한 내 마음은 자기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의 권면을 무시하는 마음으로서, 결코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존속시킬 수가 없다.
  나의 마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안식을 구하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는  수고 속에 비참한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의 마음은 나의마음 자체와  불화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결심을 바꾸고 판단을 번경시킨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옛 생각들 위에 시로운 생각들을 올려 놓으며,  그 새로운 생각들 위에 또다시 옛  생각들을 올려 놓는다.   인간의 마음은수시로 바뀌며
결코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나의 팡세!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마음을 상심시키지 말 것!
서로의 생각(마음)은 틀린(O,X)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삶을 담는 그릇은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
행복을 바깥에서만 찾으려는것은 어리석다.행복은 내안에 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에서도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것은 결국 사람이다!
헐벗은 나무들도 추운 겨울을 저렇게 끗끗히 버틴다!
내가 연약할 때 하나님은 도리어 강하다!
최고의 건강법은 자신의 몸을 무리하게 혹사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기 손에서 벗어난 돈은 다시찾기 힘들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끔 노트를 펴놓고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명언이나 속담을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는 일도 좋습니다.
자신이 만든 명언도 함께 적어보세요. 오늘 한번 해 보세요.

 

남학생이 생각하는 아버지

  -아들과 레슬링도 하고 내기 포커도 할 것이다. 아들이 학교에 가서 "우리 아빠는 개그맨이야"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아버지가 되겠다.

  -나는 탁 트인 아버지가 되겠다. 나의 아이와 세대 차이 같은 걸 만들지  않겠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아이가 '아버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겠다.

  -신세대 경향을 잘 파악해서 자식들에게  오히려 가르쳐 주고 교육적인 면에서도 강요가 아닌 자율에 맡기겠다.

  -자식의 의사를 존중하고 소질이 일찍 나타나면 어려서부터 밀어  주겠다. 나의 생각과 희망을 강제로 주입하지 않겠다.

  -내가 어느 날 시험을 잘못 보았는데도 아버지는 "너는 대기만성형이니까 꾸준히 잘해봐!"하셨다. 나는 한마디로 나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겠다.

  -나는 가족회의를  자주 열겠다. 자녀들 의견을  듣고 대화하고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투표로 정하겠다.

  -아이들과 함께 전자오락, 야구, 독서를 하고 함께 걱정을 나눌 수 있는 아저지, 아들과 손자와 산책을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겠다.
  -술을 자제하고 자식과의 시간을 많이 갖겠다. 절대로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

 

내가 받은 은사를 생각하라
 남편이 한 기독교 방송의 방송목회자인 나오며 코울은 이런  제안을 해 주고 있다. "우리가 경쟁심을 느낄 때 그런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사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변했어
   롬 12:2; 신 23:5; 애 5:21

 화목하지 목하고 싸움이 잦은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매사가 불만족스럽고 하루하루가 지겨웠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은 그녀의 얼굴이나 몸가짐, 억양에 그대로 드러냐싶다. 사소한 일로도 화가 나서, 할 수만 있다면 이 골치 아픈 집을 떠나서 세상 끝이라도 도망치듯이 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심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한 친구가 우연히 그녀를 만났을 때는,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녀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집안일이 어떻게 된거야?"
 "전과 똑같지 뭐. 하지만 내가 변했어."

 

 높이 생각하십시오

 뛰어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적극적,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읍니다.   그런 까닭에 지능지수가 높지 않고 학위도 받지 못한 사람 중에 남보다  탁월한 사람이 나타나
는 예가 흔히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뚜렷한 차이점은 그들의 정신자세입니다.


뇌파로 작동 스위치 개발
   단지 생각만으로 전등불을 켜고 오디오를 작동시킨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같은 일이 실현됐다. 미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최신호는 호주 시드니공대의 레스커컵 박사팀이 뇌파로 작동하는 스위치를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이 장치는 뇌의 뒤쪽 아래부분의 후두엽에서 나오는 8∼13㎐의 뇌파만을 15만배로 증폭시키는 전자회로를 머리띠 형식으로 만들어 생각에 따라 스위치가 작동되도록 고안됐다. 이 스위치 작동에는 눈을 감고 뇌파가 증폭되도록 평온한 마음을 갖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대학측은 1백2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아무런 훈련 없이도 95%가 스위치를 작동시켰다고 밝혔다. 이 스위치는 정상인에게는 별 필요가 없겠지만 리모컨 작동이 불가능하고 말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에게는 매우 유용한 제품이 될 것으로 보여 벌써 미국.독일기업이 기술계약을 맺었다.
또 미국.일본기업은 장난감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커컵박사팀은 5∼8㎐대의 다른 주파수 영역의 뇌파를 이용한 스위치도 개발중이어서 두 개의 스위치를 이용하면 앞으로 다른 복잡한 기능도 뇌파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

  어떤 곳에 '자살의 골짜기'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자살함으로 혹인이 그 곳에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라는 글을 써서 푯말을 세웠다.
  그 후 그  곳에 젊은 남녀가 함께  자살하려고 하였다. 와서 푯말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다시 생각하고는 죽지 않았다.
  또 다른 키 작은 사람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 곳에 이르렀을 때, 역시 푯말의 글을 보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 보라기에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는 키가 작고 다시 산다고 해도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니까!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7)


달을 보면 뭐가 생각납니까?

임금님이 어느 날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 선비의 옷을 입고 각 마을을 돌아 다녔습니다.
날이 어두워 마을의 어떤 집에서 묶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금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기 둥근 달을 보면 뭐가 생각나시오."
"달을 좋아했다는 시인 이태백의 시가 생각납니다."

임금님은 다음날 또 다른 마을에서 만난 농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이들에게  저 달처럼 크고 흰  떡을 먹일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은 곧 궁궐로  들어가서 첫번째 마을의 관리에게는  상을 내렸지만 두번째 마을의 관리는 관직을 박탈하고 엄한 벌을 내렸습니다.
그 마을의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고 못살게 군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    (아모스 5:11)

임금님이 신하에게 명해서 자세히 알아본 두 마을의 실정은 이랬습니다.
달을 보고 시인 이태백을 생각한 사람의 마을은 살기 좋은 마을이었습니다.
도둑도 없고 먹을 것이 풍족하고 이웃 간에 정이 넘쳐 흘렀습니다.
하지만 달을 보면서 배곪고 있을 아이들에게 떡 한덩이 먹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을은 아주 생활이 어려웠었습니다.
마을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착취해서 자신의 창고를 채웠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감옥이 넘쳐났습니다.
백성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혀에는 뼈가 없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라.
   이것은 수다장이에 대한 교훈이다.
혀에게 재주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수다를 떨지 말라, 비밀은 꼭 지켜라,혀로 말하기 전에는 항상 생각하라 하는 것들을 아무리 타일러도 혀는 곧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혀에는 뼈가 없다. 당신은 혀라고  하는 것이 연체동물임을 항상 의식해야한다. 혀는 당신의  일생의 운명을 지배하는 중요한  몸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입을 잘못 놀려서,  해서는 안될 소리를 해서, 잠자코 있어야 할 때 입을 놀려서 인생에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당신은 혀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진듯 제멋대로 움직인다.

 말이나 음성은 인간의 '제의 얼굴'이라고  한다. 입을 오래 벌리고 있으면 자신이 거기서 도망쳐 버려 자기 자신을 잃을 수가 있다. 말 한마디 덧붙이는 것은 언제라고 가능한 일이지만 이미  해 버린 말을 주워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바구니 선교헌금
   고후9:13; 막6:15; 롬15:30-33

 1828년 미국 보스턴 교외  부룩클린에 사는 윌리엄 로프스라는 회중교회 교인 집에서 가정집회가 열렸다. 매달 정기모임을 갖는 이 가정집회에는 해외선교에 깊은 관심과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그 곳에서 전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한마음으로 기도함은 물론 선교헌금을 모아 선교지로 보내곤 했다.
 그들은 첫번 집회 때에는 헌금을 했는데 첫번 선교사업 지역을 일본으로 정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들이  헌금을 어디로 보낼지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집주인 로프스가 평소 애지중지하던 대나무로 만들어진 헌금바구니를 치켜들며 말했다.
 "이 대바구니는 일본 제품인데, 몇 년 전에 제가 네덜란드 거래상으로부터 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만든 일본에는 아직 복음이 전파되 지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  선교를 위해 헌금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일동이 모두 찬성했고, 이  때 27달러 87센트의 헌금이 모아져서 그것이 일본 선교의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 50%,대형사고 부끄러워 이민 생각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잇따른 대형사고의 충격으로  기성세대를 불신하게 된 것은 물론 심지어 이민까지 생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재단법인  '청소년 대화의 광장'(원장 박성수)이 서울 등  전국 중고등학생 1천1백27명을 대상으로  '대형 사고에 따른 충격 및 후유증 대처방안에 관한 청소년 의식'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18일 밝혀졌다.
  조사결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해 어느정도 충격을 받았는지를 물은  결과 83.8%가 꽤 또는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응답했으며, 약간 충격적이라는  응답이 10.5%,너무 잦아서 무감각하다는 응답도 3%였다.
  반면 전혀 아무렇지  않거나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응답한 학생은 각각 1.7%,1%에 불과했다.
  또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대해서는 60.6%가 '꽤 또는 매우' 충격을  받았으며, 이밖에 대구 지하철 및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에 대해서는 각각  44.4%, 27.1%가 충격적이라고 응답했다.
  대형사고 직후 청소년들은 ▲사고 책임자가 원망스럽다(85.5%) ▲어이가  없고 멍했다(72.8%)  ▲화가 많이 났다(68.6%)  ▲슬펐다(66.3%) ▲사고가  자꾸 떠오른다(57.9%) ▲불안하고 무서웠다(56.6%)는  등의 느낌을 받은 것으로 조사(복수응답)됐다.
  특히 기성세대를 불신하게 됐다는 응답이 64%, 이 나라가 부끄러워  이민가고 싶었다는 반응이 49.9%에 달했으며 이러한 감정은 정도는 다소  덜하지만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사고로 인한 충격이 남아있는 기간은 1주∼1개월이 39.3%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1주일  이내 33.1% ▲2개월∼3개월 8.6% ▲7개월∼현재 6.6%  ▲4개월∼6개월이 1.4% 순이었다.
  사고로 받은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그냥 잊혀지기를 기다린다는 소극적 응답이 59.3%로 가장 많았다.
  한편 이들 4개 대형 사고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28.9%였는데, 피해 대상자는 학교학생이 12.5%, 친구 9%, 이웃 7.2%  등의 순이었다.
  청소년 대화의 광장은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20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신당6동 청소년 대화의 광장 강당에서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4회 청소년문제 토론광장을 개최한다.


 데카르트 탄생 4백주년
 지금은 철학이 유행하는 시대다.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요슈타인 가더의 『소피의 세계』다.「세계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인 이 책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 2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됐다. 노르웨이의 한 고등학교 철학교사인 가더는 이 책한 권으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14세 소녀 소피 아문젠은 어느날 이상한 편지 한통을 받는다. 편지에 적힌 것은 『너는 누구니?』라는 한 문장뿐. 다음 편지는 다시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라고 묻는다.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사람이 죽은 뒤 또 다른 삶이 있을까?』 등. 소피는 처음엔 당황하지만 정체불명의 철학교사 알베르트의 안내를 받으며 무궁무진한 철학세계를 여행한다.
 철학은 회의(懷疑)로부터 시작한다.위대한 회의는 위대한 철학을 낳았다.소크라테스의 회의가그리스철학을 탄생시켰고,아우구스티누스의 회의가 중세철학의 발단이 됐으며,데카르트의 회의가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됐다.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뒀다.철학·수학·기하학·자연과학 등 필요한 것은 모두 배웠다.그럼에도 지적(知的) 공허감(空虛感)은 사라지지 않았다.데카르트는 당시 학문을 방법론적 기초가 없는,주관적 상상과 근거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학문적 기초를 확실히 하기 위해 불확실한 모든 지식을 하나하나 의심해 나갔다.소위 방법적 회의다.의심에 의심을 거듭한 결과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해도 단 한가지,즉 의심하는 나란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나는 생각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 철학의기본명제(命題)이자 출발점이다. 
 3월 31일은 데카르트 탄생 4백주년의 날이다.프랑스는 지금 데카르트 붐이다.철학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기념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카페에선 철학논쟁이 뜨겁다.TV에서도 철학관련 프로가 인기다.『소피의 세계』의 저자 가더는 철학은 「현대인의 비타민」 이라고 표현했다.정신생활의 필수영양소라는 뜻이다.그러면 우리의 정신적 영양상태는 어떤가.데카르트 탄생 4백주년을 맞아 프랑스인들이 보이는 철학열기(熱氣)는우리에게도 「철학해야 할 」 절실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돌로 된 마음
    딤후 2:12, 13; 유 1:4; 마 25:34, 75

 아이언사이드는 언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린 소년 소녀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그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들려주었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이 계속 예수님을 부인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얘야,  네 마음은 돌로 된  마음이구나' 하고 말씀하실거예요.얼마나 슬픈 일이겠어요?"
 그런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 아이가 이 말을 듣고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그 아이는 아버지의 품속으로 뛰어들며 울부짖었다. "아빠, 아빠의 마음이 어떻게 됐나 보세요. 혹시 돌처럼 딱딱해지지
않았어요?"


탈무드 두개의 머리 

 <탈무드>에는 어떤 사고법을 단련시키기  위해 현실성이 부족한 원리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한 가지 예를 들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현실과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적인 질문이 있다고 하자.

 [만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태어났다면,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 같지만, 예를 들어,'인간은 설령 머리가 둘이더라도 몸통이  하나이면 한 사람이다'라든지 '머리  하나를 한 사람으로 취급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 한 달이 지나면 예배당으로 데리고 가서 축복을  받는다. 그런데 이 때 머리가 둘이면 두 번 축복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몸통이 하나이니까 한번만 받아도 되는가?
 또,기도할 때는 작은 주발을 머리 위에  얹는데 이 때 머리가 둘이니까 두개의 주발을 얹어야 하는가? 혹은  몸통이 하나이니까 한 개의 주바를 얹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 가설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탈무드> 의 답은 아주 명쾌하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쪽  머리도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만일 다른쪽 머리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두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나는 유태인들이 어떤 민족인가를 이야기할  경우, 이 이야기를 곧잘 인용한다. 결국, 이스라엘에 있는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거나, 러시아에 있는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른다면 그는 유태인이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유태인이 아닌 것이다.

 <탈무드>에는 이와 같이 응용 범위가 넓은 우화들이 매우 많다. 왜 랍비들은 설교를 할 때, 이와  같이 어려운 우화를 인용했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설교는 곧 잊기 쉽지만, 우화의 교훈은 오래도록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에게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죄이므로, 남편은 아내를 용서해줄 수 있는 권리조차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유태인에게 내리신 율법에 도전한 범죄이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에 대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죄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똑같은 바람인데
   마 5:45; 시 95:8; 히 3:13
상선 두 척이 순풍을 받으며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상선에서  반란이 일어나 선장이 살해되고 선원들이 감금당했다.
그 후 반란자들은 배의  진로를 바꾸어 자신들이 탈취한 상품들을 안전하게하역할 수 있는 해적떼들의 섬을 향하여 출발하기로했다.
  정직한 배를 움직이던 동일한 바람이 이제는 사악한 배까지도 움직였으므로 범죄를 도운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바람이 범죄를 돕기 위하여 한 일이라고는 계속 불어 준 것뿐이다.
  하나님을 용납하지 않는 강퍅한 마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1. 당신 자신의 뜻을 내어 맡기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먼저 무엇보다도,자신의 마음을,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의지라는 것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는 상태에 두도록 힙씁시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주님의 뜻- 가령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 해도 그것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곤란의 10분의 9는 이미 극복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이러한 상태에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까지의 도정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입니다.
 2. 감정에 의뢰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마음을, 1에서 말한 대로의
상태로 두고, 나는 그 경과를 감정이나 단순한 인상에 맡기려 하지 않읍니다.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는 중대한 과로를 범할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의해, 성령의 뜻을 구하도록 하십시요. 나는,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혹은 성서와의 관련에 있어서, 성령의 뜻을 구합니다. 성령과 말씀이 결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말씀을 부시하고,성령에만 주목한다면, 나는 또 중대한 과오를 범할 위기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면, 말씀인 성서에 따라 인도하십니다. 말씀에 모순되는 인도법을 취하시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환경에 주의하십시오. 다음으로 나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자기의 주위 환경을 고려하게 됩니다. 환경은 말씀이 성령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지시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입니다.
 5. 기도하십시오. 나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게 뜻을 옳게
계시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6. 기다려라. 이렇게 기도와, 말씀의 연구과, 묵상에 의해 나는 자기의 능력과 지식이 미치는 한의 신중한 판단을 내립니다. 만약 이같이 한 결과, 내 마음에 평안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다시 두세번 하나님께 탄원한 후에도 그 평안이 지속된다면 자기의 판단에 따라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또 가장 중요한 일의 처이에 있어서도, 이 방법이 언제나 유효한 것을 나는 발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치라

  얼마 전 나는 마귀의 부정적인 생각을 허용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이 기도하다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심방하러 가는데 가는 도중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힘없이 축 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귀가 내게 "너,쉬 피로하고 무기력해질 때가 많지? 당뇨병에다 암이다. 또 앉았다가 일어나려 면 핑 돌지? 고혈압이란 증거야. 휴식없이 무리하게 해외 선교를 다녀 얻은 병이 다."라고 속삭였습니다. 나는 그 속삭임에 긍정했습니다. 그러자 이 생각이 확대 되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내 자신이 입원해야 할 것 같은 암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라.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즉시로 깨닫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나는 주 안에서 건강하다."고 시인을 했습니다. 또한 부활의 새 생명을 받은 나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자 불안과 의심이 사라지고 활기가 넘쳐났습니 다. 만일 마귀의 생각을 좀 더 허용했다면 그날 심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마귀의 생각을 극복하고 은혜 중에 심방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음먹기 나름

  죄수들은 타에의해 감옥이라는 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수도사들은 스스로 산 속 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둘 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독하고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죄수는 내내 환경을 불평하거나 타인을 저주하기 때문에 감옥이 그야말로 감옥입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깊은 진리를 찾아 스스로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도 며칠식 굶어도 기쁨과 감사로 하루를 보냅니다.
  감옥의 죄수가 수도사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감옥은 수도원이 되고,수도사가 불평을 하며 죄수와 같은 마음을 품으년 수도원은 감옥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행복과 삶의 가치는 환경에 있는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성경잠언11:29)


마음에 화장하기

  화장은 얼굴을 가꾸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가꾸기 위한 것이기도 해.  화장을 하려고 거울앞에 앉으면 허겁지겁 스킨부터 바르려 하지말고 우선 자신의 눈동자를 들여다 봐야 해. 화장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예쁘게 가꿔야 얼굴도 예뻐지거든.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서 마음속의 왕자님을 그리는 거야.  마음이 예쁘고 평화로워 졌으면 화장을 시작해. 먼저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이 자신의 마음속에 스며 들기를 기원하면서 스킨을 발라.  그 다음에 이 세상의 향긋한 꽃향기가 가슴속에 가득 차기를 바라면서 로션을 바르지. 천천히 말야. 그리고 나서 아이의 새살을 돋아나게 해 주십사 하면서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안고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진실만을 말하는 예쁜 입술이 되게 해달라고 하면서 루즈를 칠하는 거야.


마음을 막대기 위에
  곡예용 그네를 타는 방법을 몹시  알고 싶어하는 어떤 젊은이가 한 노련한 써커스 단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마음을 막대기 위로 던져라, 그러면 너의 몸이 뒤따를 것이다."
  경험을 가진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마음을 던지십시오. 일을 명랑하게 열성적으로 하십시오. 일에 마음이 먼저 갈 때 신체는 훨씬 더 쉽게 수행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마음의 무게
   잠 23:26; 마 15:8; 막 12:30
  유치부에 다니는  소녀가 어느 날 주일학교에서  급히 집으로 돌아오더니몸무게를 달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물었다.
  "너 어제도 몸무게를 달더니 오늘 또 다니?"
  "오늘 아침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내  마음을 바쳤기 때문에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나 알아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엄마, 몸무게가 어제와 똑같아요."

 

마음의 생각

    최면술 연습 시간에 호기심에 찬 학생 몇 명이 스스로 시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여 손을 들었읍니다.  교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인 듯한 한 학생을 지목하여 교단에 서게 하였읍니다. 교실 전체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읍니다. 학생들은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읍니다.
    "이 압력계를 들고 손으로 힘껏 쥐어 보십시오."  강사가 그 학생에게 말했읍니다. 그는 압력계를 있는 힘을 다해 거세게 쥐었읍니다. 계기에는 압력 101 파운드가 나타났읍니다.
    그 다음에는 의자에 편히 앉으라고 하였읍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최면술을 걸어 아까 했던 것을 다시 시키겠읍니다." 학생은 최면 상태에서 다시 압력계를 잡았읍니다. 강사는 그에게 힘이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졌다고  말했읍니다. 그랬더니 있는 힘을 다해도 29 파운드 이상 올라가지 않았읍니다.
    그러자 최면술 강사는 그 학생에게 최면술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이제는 힘이 다시 돌아와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암시했읍니다. "이제   다시 압력계를 잡아 보십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압력계 계기가 142   파운드까지 올라갔읍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읍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안됩니다. 또한 할 수 있다고 굳게 확신하면 결국  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잠23:7)


탈무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피하고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탈무드>에 있는 이런 경구가 이미 수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 움을 감출 수가 없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가장 교육열이 높은 유태 민족을 '책의 민족'이라고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책이란 것이  귀하였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앞의 경구가 쓰일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단순히 책을 읽는 것과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수만 종이나 되는 많은 책 속에 파묻혀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책을 다만  읽는 것으로 그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마치 나귀가 책을 싣고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탈무드>는 가르치고 있다.


말씀과 생각
참고본문 : 골 1:28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생각을 자꾸하는 사람이다. 참 말씀을 알고 말을 하려는 사람은 그 가슴 속에 생각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사람이다. 자꾸 일어나는 참의  불꽃이 있어 그것이 말씀으로 타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참을 알고 싶은 사람은 말을 뱉어내고 싶어한
다.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은 신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신과의 연락에서 신이 건네주는 것이  생각이다. 신이 건네주지 않으면 참 생각을 얻을 수 없다. 참  생각은 신과의 연락에서 생겨난다. 나오기는 나에게서 나오는데 오기는 하늘에서  온다. 나오는 것은 생각이고 오
는 것은 생명이다. 말씀은  하늘에서 온다. 하늘에서 온 것을 여래(여래)라고 한다. 땅에서 싹이  나듯 사람에게서 즉흥적으로 난 생각 이것이 참이다. 이러한  참에서 기쁨이 나온다. 이런 삶이 기쁜삶이다.

  나는 이 참에 도치하여 시간을  잊는다. 내가 몇 십년 동안 인생을 살면서 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알려면 그의  말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그의 말을 알면 그사람을 알게 된다. 들어야  할 말을 들으면 죽어도 좋다는 말이다.
말을 알자는 인생이고 말을  끝내자는 인생이다. 말을 알고 세상을떠난면 악을 면한다.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절대자에 대한신앙뿐이다. 하나님을 따른다. 말씀을 따른다.


말은 마음의 열매

  `말'의 원래 뜻은 `마음의 알갱이'라는 뜻이랍니다.
어떤 마음을 먹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평상시 무심코 하는 말이 그대의 본심 입니다.
`괴롭다' `죽겠다' `힘들다' `나는 어쩔수 없어' 라는 말을 자주 쓴다면 말 그대로 마음이 그렇게 죽어가고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에 얽매이지는
마십시오.
 `즐겁다' `자신있다' `신난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건강하다' `힘이 난다' `믿는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쓰다보면 정말로 말하는대로 되는것을 느낄수 있을것입니다.
  마음의 열매는 말 입니다.
마음은 나 자신 이구요.


말을 아껴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교수에게 한 학생이  『교수님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교수는 『입을 적게 움직이고 머리를 많이 움직이게』라고 대답했다.자신의 일에 골몰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일에 골몰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타인들의 흠만 보인다.그리고 타인들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지혜로운사람은 말하기 전에 반드시 두번 생각한다.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매일을 당신의 첫번째 날이라고 생각하라.

 <탈무드>에 나오는 말로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준다.
 대개의 인간은 60년,70년,80년,100년을  산다. 그러나 100년을 산다하더라도 한꺼번에 100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아가서 시간시간,1분1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이며, 나아가서는 1분 1처가 전인생인 것이다.

 인간이 오늘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충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활기차고 희망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것은 지금 한순간이다. 단지 한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생각이 떠오를 때 실천하라
 잠11:18;22:8; 시97:11; 롬8:5,6

  사무엘 스마일즈는

   "생각을 심으시오.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행동을 심으시오. 습관을 거둘 것입니다.
    습관을  심으시오. 성격을 거둘 것입니다.
    성격을 심으시오. 신의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생각을 기르십시오. 왜냐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생각 이상으로 오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모든 행동에 수반되는 생각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처음 생각은 마귀의 생각이다." 라고 했다.
  그러므로 첫번째 생각이 떠오를 때 과감히 실천해야 한다.

 

◈먼저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
  어느 목사님께  컴퓨터 성경 프로그램인〈목자성경〉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받아서 사용해 볼 것을 권면했다. 그 목사님은 통신에서 목자성경 화일을 받았는가 보다. 그러나 잘 안된다고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열심히 알려주었으나, 그  목사님은 안된다고 하면서 답답해하신다.   알고보니, 압축을  풀지 않고 실행을 한  것이다. 그러니 될 
리가 있나! 아직은 그 목사님이 컴퓨터 초보자였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옷보따리를 풀지  않은 채,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든지 풀어놓고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묶어놓은  채,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무슨 말(語)들을  열심히 하지만, 자기 주장만을 하거나 고집을 부리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선 나부터 꽁꽁 묶여 있는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도 내 보따리에  넣어둘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좋은 생각을 내 보따리에 쌓아두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기회가 오리라.
   빈약한 내 보따리를  풍성하게 하려면, 제일 먼저  나의 보따리를 확 풀어놓아야 한다.


"모든 지도자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곱가지 질문"
                (쥬디스 코우취맨)
  1. 지도자가 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 소명이 있는가? 이 소명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 목표를 향한 열정이 있다면 그는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다.
     - 나를 지도자로 지지하는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

  2.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가?
     - 자만심은 지도자의 이기적 동기중 하나이다. 자신의 자
       만심을 만족하기 위해 리더쉽을 사용한다면 모임의 기능
       은 와해 될 것이다.

  3.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는가?
     -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세운 리더였지만 불순종 때문에
       쫑겨난 경우이다.
      
  4. 내가 실제적인 리더인가?
     - 리더는 모임을 위한 충분한 도구와 방법, 인력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관리에 불과한 것이
       다. 관리자는 주변을 서성대며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
       는지 확인하는 자이며, 리더는 전체적인 사명의 방향과
       동기를 제시하는 자이다.
      
  5. 누가 실제로 모임을 다스리는가?
     - 궁극적으로 모임의 방향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
       령이다.
      
  6. 비젼은 무엇인가?
 
  7. 목적이 무엇인가?
     - 구성원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리더의 최종목적이
       된다. 리더쉽 전문가인 테드 앵스톰은 '모임이나 사람들
       로 하여금 바람직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최초의 동기
       를 불어 일으키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중국 노나라에  재경이란 목수가 살았다.그의  목공솜씨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특히 거문고 제작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이 소문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 재경은 왕 앞에 서게 되었다.
 『그대는 무슨 기술로 훌륭한  악기를 만드는가?』 왕이 묻자 재경은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다.『사흘  동안은 악기만 생각합니다.다시 닷새를 보내면 사람들의 칭찬과 비난에  동요하지 않게 됩니다.다시 이레를 보내면 고요한 마음에 거문고가 떠오릅니다.그러면 비로소 산에 올라가 나무를 구해만들지요』


 목회자의 믿음과 교회성장
  
 성장한 교회들을 연구해 보면 목회자의 믿음이 교회성장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교회는 현재의 모습보다 더 많은성장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잠재력의 열쇠는 바로 믿음이다.많은 교회성장 세미나와 훈련을 받는 목회자들의 공통점은  "이제  우리교회의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많은 약속과 명령들은 개인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주어진 것이다. 교회마다 처한 환경은 다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성장을 원하신다. 따라서 성장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믿음이 야말로 교회성장에 있어 중요한 자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거룩한 백성들
글쓴이 : 행복인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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