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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는 뜻

아 푸른하늘 2010. 7. 6. 17:5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는 뜻

 

 

린도후서 13장 5절의 중점은 그 앞의 요점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5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여기서 중대하면서도 어려운 요점이 믿음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6절과 7절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함이라” 이것은 신약에서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들 중 하나이다.

고린도인들은 전적으로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육체 안에서 살았다.

그들은 바울이 사도가 될 만큼 강하거나 뛰어나지 못하며, 심지어 무식하다고까지 생각했다.

대부분의 성경 교사들은 바울이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한다.

아마 베드로는 비교적 키가 큰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는 바울보다 더 선호할 만했을지 모른다.

또한 아볼로는 바울보다 더 유식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고린도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베드로를 키 큰 사람이라고 해서 사모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볼로를 학식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모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들 가운에서 사모함을 얻지 못했을 수 있다.



바울은 확실히 학식 없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의 학식을 과시하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 두 책에서 그는 자신이 고린도인들에게 나아갈 때 말의 뛰어난 것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말한다(고전 2:1, 고후 11:6).

그는 합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의 말에 적용하지 않았다.

그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자였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고린도인들은 그를 약하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이 점을 근거로 하여 자신이 참으로 약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그들이 믿음에 있는가 자신들을 시험하라고 권면했다.

이렇게 함에 있어서 바울은 지혜로웠다.

이렇게 말할 때, 그는 사실상 그들이 사도들을 아는 것과 관련하여 믿음에 있는지 그들 자신을 시험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외관상 5절에서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사도들을 아는 것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아는 것에 관해 그들 자신을 시험하기를 요청한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 안에 있다면, 그는 그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를 대하든지 외모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5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아무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고 말한다(16절).

우리는 사람들을 알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볼 수 없는 것에 의해서 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체화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그들이 믿음에 있는지 그들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만일 믿음에 있다면, 그들이 보거나 느끼는 것의 어떠함에 따라 그들 자신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믿음에 따라 그들 자신을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믿음에 있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만일 믿음에 의해 믿음 안에서 그들 자신을 생각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을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그처럼 느끼지 않았을 것이며, 더욱이 그렇게 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믿음에 있는 사람들이 될 필요가 있었다.

마치 그들이 그들 자신을 믿음 안에서 생각해야 했던 것처럼 사도들에 관하여도 동일하게 믿음 안에서 생각해야 했다.

사도들은 보이는 것이나 외모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 안에서 인정되어야 했다. 바울과 같은 그러한 형제는 약하게 보였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믿음에 따라 그를 생각한다면, 그가 자신이 아닌 자신 안에 계시는 분 안에서 강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당신이 다른 이들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를 고려함으로써 자신을 시험해야 한다.



고린도인들은 바울을 외적인 풍채에 따라 판단했다.

그들이 다른 이들을 이런 식으로 판단한 이유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에 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그들 자신을 믿음의 길에서 시험해보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이 육체 안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아마 그들에게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 그들은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도 없으며,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계시지 않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오직 육체와 천연적인 생명만이 그들 안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인들은 그들 자신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외모에 따라서는 자신들이 육체 안에 있는 천연적인 사람들일지라도,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서는 외모대로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사도에 대해서는 그의 외모대로 그를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요점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우리가 보고 느끼는 어떠함에 따라 생각하지 말고 믿음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음 안에서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약함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족한 은혜의 누림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13장은 12장의 계속으로 보아야 한다.

이 두 장을 함께 놓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항상 다른 이들은 물론 우리 자신도 보이는 것이나 외모에 따라서가 아닌 믿음 안에서 고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약하게 보이겠지만,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족한 은혜를 누릴 것이다.

우리가 강하다고 느끼고, 우리의 강함의 표시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리는 데에서 끊어진다.

이것은 하나의 큰 공과이다. ... 고린도인들은 거의 전체가 바울을 무시했다.

그들을 대할 때 바울은 약했으며,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믿음 안에 있는지 그들 자신을 시험해보기를 요청했다.

그들이 만일 믿음으로 그들 자신을 시험한다면, 그들은 공과를 배울 것이다.

믿음으로 시험해보지 않고서는 그들 자신이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행복충전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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