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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지막 때와 이스라엘의 회복 김우현감독 , 한 새사람(루벤도런 저) 본문
마지막 때와 이스라엘의 회복 김우현감독 2강의특강 영상보기
벤자민오 한 새사람 설교
마지막때를 살려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반드시 알아야합니다.
왜냐면 이방인의 충만한 때가 지나고 유대인에게 복음이 들려지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종말론을 공부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 한 새사람 책을 소개합니다.
한 새 사람/루벤 도런(west wind) 책 요약 전문보기http://cafe.daum.net/bless-ch/5V4k/62
제 1 부 화해의 시작
1. 사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을 더럽혔다. 우리는 부정해졌다. 하나님의 정당한 진노가 우리에게 임했고, 그 분의 공의로운 심판에 따라 우리를 열방 중에 흩으셨을 때조차도 우리는 그곳에서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게 지금까지 우리를 보존하셨고 고통과 치욕으로 가득한 이천여 년 동안 이스라엘을 증거로서 지키셨다.
2. 한 새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함께 한 새 사람을 이루는 것은 장차 을 시대의 징조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영적인 자손(이방)과 육적인 자손(이스라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 될 때. 영적인 영역과 육적 영역이 연합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방해 받지 않고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와 육적 세계의 문들이 활짝 열릴 때 하늘의 실체가 하늘과 땅의 영역 사이에 자유롭게 교류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에 감추어 두신 우리의 하나님은 얼마나 놀랍고 좋으신 분인가! 하나님이 지으실 가장 새롭고도 최종적이며 최고의 창조물인 '한 새 사람'이 바로 주님의 집, 즉 성령 안에서의 하나님의 처소를 만드는 재료가 될 것이다. 이 창조물은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하여 예수님 자신의 본성과 생명을 구현할 것이다. 한 새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에서 만드시는 자질과 덕목들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완전하게 연합된 유대인과 이방인의 공동체에 각인될 것이다.
3. 모든 분열의 뿌리
이스라엘이 선택 받음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생긴 오래된 분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분열인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들 사이의 분열은 구속 받은 새로운 사람들 안에도 들어왔고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 안에서 더욱 파괴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사실 바로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의 몸에는 서로 연합하지 못하는 지체들의 분열과 그 상처의 고통스런 흔적으로 인해 생명이 잘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전한 화해가 성취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십자가를 통하여 속죄함을 얻어 하나님과 화해되었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물사이에도 화해가 이루어져 모든 적대감과 경쟁, 편견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이미 다 녹아 없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은 물론이고 교회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불화가 있어 왔으며 화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유대인 형제들은 "평범한" 기독교적 표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서 자기들의 독특한 역사적, 인종적 성격을 보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배타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교도적인 관습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방 교회들은 전통적인 유대적 양식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경험하고 표현하려는 유대인 형제들의 시도를 경멸 섞인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느 쪽이든 유대인들은 여전히 영적인 게토에 고립되어 있다. 한 새 사람의 무리가 하나님의 목적의 중심에 서 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겸손과 자기 부인(self-denial)으로 연합하여 함께 한 새 사람을 이루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것이 사단의 중요한 공격목표가 된 것이다. 우리가 자기 부인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됨보다는 자기 보존을 중시하는 한, 분열의 영은 항상 합법적으로 역사하여 교회를 병들게 할 것이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가? 한편에서는 유대인의 자긍심과 자기 보존 심리가. 다른 한편에서는 이방인의 불안함과 교만이 만나서 유대인의 배타성을 낳았고, 이방인들은 "대체"의 사고방식을 낳았다. 이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이방인들이 자신들이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4. 마지막 세대
성경은 정한 때에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을뿐 아니라(시102:13), 계속해서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중에 나타나셨음이라."(102:16)고 선언하고 있다. 시온을 건설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마지막 때에 고향 땅과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적 소망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다. 그런데 시온을 건설하는 것은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친히 나타나시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자기 땅에 다시 세우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백성 가운데서 자기의 이름의 거룩함을 증거하실 때 그의 능력과 사랑과 모든 창조물에 대한 의로운 심판이 영광가운데 드러날 것이다.
5. 교회의 정체성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영원한 정체성은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주님은 우리의 근본이시고, 우리의 머리시며, 우리의 지도자이자 우리의 생명 자체이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 역시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존재도 무의미하다. 진실로 교회의 자연적 정체성에 관한 한, 주 예수님의 교회는 그 뿌리를 이스라엘에 두고 있다.
교회는 이스라엘과 분리되거나 단절 되도록 의도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이스라엘을 대신하거나 밀어내거나 또는 이스라엘과 분리되도록 부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교회는 "이스라엘 나라" 안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접붙이시며 그들을 구원하고 치유하기를 원하셨던 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래 의도셨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 세계를 축복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가 태어난 것이다.
제 2 부 한 민족의 이야기
7. 열방 중의 첫 번째
하나님의 마음에는 열방을 향한 자비롭고도 친절한 계획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첫 번째 대상이었다. 이스라엘은 믿음과 순종을 배워야 할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공동체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배워야 할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예언적인 인도하심과지시를 받아들이고,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원수의 성문을 취하고 하나님의 큰 자비와 실패하지 않는 사랑에 의지하는 법을 배울 첫 번째 민족이었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복음과 그 구원의 능력에 관한 한 첫 번째 대상일 뿐 아니라 그 환난과 고난에 있어서도 첫 번째 대상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유대인들이 축복과 저주에 있어서 모두 첫 번째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목적은 어떤 한 민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단독으로 받는 수혜자로서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어떤 한 민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단독으로 받는 수혜자로서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한 민족 안에서 시작하신 일이 다른 모든 민족에게로 흘러 넘치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치유되고 축복받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8. 이스라엘의 딜레마
이스라엘의 사역은 열방을 위해 중보하여 그들을 하나님께 데려오고 하나님을 열방 앞에 나타냄으로써 열방에게로 모셔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자기 소명을 받아들여 기쁘게 종의 옷을 입고 심지어 이방민족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게 될 때까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다.
9. 대속 제물이 된 민족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선택하신 백성들을 노예상태에서 구출하셔서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보존하시고 왕과 제사장들을 주시며 그들을 인도하셨으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하시고 눈 멀게 하셨는가? 수세기에 걸쳐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루시고 보호하시고 보존하셨으면서도 아직도 하나님과 그분의 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그들을 가두어 두시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롬 11:11) 사실 바울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비극을 세상의 이방 민족들을 위한 엄청난 축복과 연결시키고 있다. 이 축복은 메시야의 중보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혜와 지각 안에서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한 민족이 복음의 원수가 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볼 때 이것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계획을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진실로 성령의 영감과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대속 제물이 된 민족이었다.
10. 이스라엘-하나님의 객관적 교훈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우리를 선택하시는 분이고,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선택을 설명해주는 배경이고 원형이며 현존하는 역사적 증거이다. 절대 주권과 우리의 일에 관한 하나님의 결정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고 이것이 최초의 불순종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의심은 아담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유전되어 바벨탑을 세운 사람들과 열방의 건국자들과 지도자들에게까지 미쳤다.
자기의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통치와 쌍을 이루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도덕적 의무와 심판의 책임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모든 명령에 순종했어야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엄숙한 교훈을 주시고 있다. 사실 하나님의 심판 안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고 그분의 권위에 아무런 저항이나 이의 없이 복종하는 모든 자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시험하며 완전하게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우며 그 심판은 우리 안에서 경건한 성품과 거룩함에 대한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한다. 유대인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장은 결국 모든 것이 그분의 자비하심에 관련된 내용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이 자격 없는 민족과 그들의 황폐한 땅 위에 다시 불타오르고 이를 통해 치유와 회복과 부흥이 임할 때 우리는 마지막 때를 보게 될 것이다.
11. 누가 유대인인가?
시대의 완성을 목격하게 되고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한 새 사람의 무리는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정도를 휠씬 능가하는 차원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비전을 붙들고 지구상에 임할 이 시간을 위해서 수고하며, 옛 히브리적 요소가 메시야의 몸에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바울이 그랬듯이)모든 오만한 자기 만족을 회개하고 모든 불필요한 짐을 내려 놓아야 한다. 한편 이방인들은 교만에서 나온 모든 불안정함을 회개하고 이스라엘이 무지와 눈멈의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참된 정체성을 되찾도록 기도해야 한다.
제 3 부 회복의 약속
12. 회복을 위한 움직임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과 경륜을 변호하시면서 이스라엘이 다시 한 나라로서 출현하고 자기의 은혜 가운데 들어올 것이라고 선포하시고 계신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고 이미 우리에게 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을 그 약속의 땅으로 계속 모으시고 있고 혼돈과 불신의 세계가 보고 있는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는 그들의 회복을 증거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죽은 자들의 부활. 주님의 재림은 모두 세계 종말을 의미하는 두려운 대사건들의 절정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광스러운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일정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질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점점 더 가까워 오는 그분의 강림하심과 점점 강해지는 그분의 임재에 의해서 촉발되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4. 그 받아들임은 어떠하겠는가?
육적 이스라엘의 태아가 태동한 때와 강력한 오순절의 물결이 병행적으로 나타났고, 이스라엘의 민족적 주권의 회복과 능력 있는 계시의 사역들이 병행적으로 나타났으며, 민족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탈환과 성령의 은사적 기름부음이 병행적으로 나타났다면,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롬 11:12)은 얼마나 놀라울 것인가?
저희가 충만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우리가 충만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과 같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엄청난 환난의 와중에서 그리고 영광의 문턱에서 충분하게 “한 새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마음이 만족을 얻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성경의 언약이 성취될 것이다.
15. 첫 열매
이스라엘의 교회와 전 세계에 있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이 약속된 '접붙이심'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거듭난 성도들의 수는 지난 10여년 동안 거의 2,000%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교회는 10년 동안 거의 20배로 불어난 셈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교회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세대는 민족 전체를 위해서 중보하고 수고하며 무너진 틈을 지속적으로 막아서고 있다. 이들은 제자들로서 주님의 예언적 역사하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이미 성취된 예언의 현장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섬기고 있다. 젊은 교회들과 사역자들은 자기들이 첫 열매인 것을 매우 잘 알고 있고 추수해야 할 나머지 모든 자들을 위해서 영적 전쟁을 치르며 믿음으로 서 있다. 참으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하나님은 무너진 옛 터를 다시세우시고 그 땅을 치유하시며 마지막 때에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이 나라를 준비시키시고 계신다.
16.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
생필품들과 교통비와 주거비가 이스라엘에서는 매우 비싸다. 국가 예산의 절반이 치안과 안보를 위해서 쓰이기 때문에 세금도 매우 무겁다. 또한 구 소련으로부터 이주해 온 많은 이주민들로 인해서 이미 있던 경제적 어려움에 더 큰 부담이 추가되었다. 주택, 직업, 언어, 사회적 문화적 적응 등의 문제는 이러한 어려움들 중의 일부일 뿐이다. 이방의 교회는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거룩한 나눔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 헌금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적절한 때에 거룩하게 구별되어 쓰여지도록 해야 한다. 주님 자신이 주권적이고 기적적으로 경제적 원조와 부를 이스라엘로 끌어들이실 때까지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일에 있어 우리 각 개인이나 단체의 몫이 작든 크든 이방 형제들의 손을 통해서 이스라엘 교회를 유지하고 세우는 일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확신한다.
제 4 부 회복을 위한 고통
17. 영토 전쟁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그의 후손과의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은 고대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이 분명히 성경적이며 법적인 용어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 맹세, 언약, 율례, 영영한 언약등의 표현들은 모두 이 결정의 신성함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한 안내자 같은 보증들이다. 그러므로 이
땅 전체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이 기업은 영원하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약속은 그 영적 회복이 반드시 성취되지만 그것은 오직 그들이 그 땅으로 돌아온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18. 성지의 더러운 발자국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제국 중에서도 항상 개발되지 않고 무시되던 지역이었다. 한 번도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던 적이 없었고, 이슬람 성전을 세우기는 했으나 문화적 중심지였던 적도 없었다. 외형상 아랍인 마을로 보이는 수백 개의 지명들이 사실은 고대 성경 히브리어 이름의 번역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중동의 평화는 절대로 땅으로 살 수 없다. 최근 이스라엘의 존재권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명서들은 여전히 서방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공표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PLO헌장에 언급된 최종 목표는 여전히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이다.
백만이 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이러한 사단의 정치적 속임수에 걸려 넘어져서 악한 게임의 손아귀에서 하수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발견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땅에 이방인들을 심으시고 보호하실 뿐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민족들 사이에 장차 화평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놀라 당황해 하는 전 세계의 눈 앞에서 자기의 거룩하신 이름을 회복하실 것이다.(겔 36:23~24) 이 고통의 땅은 마침내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 즉. 영원히 지속될 평화를 낳을 것이다.
19. 에서와 야곱의 화해
아랍인들과 화해(주어진 시간에 가능한 정도까지)하려는 시도는 유대인들이 앞으로 자기들의 사명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참된 화해는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을 믿는 믿음에서 생겨나는 깊은 겸손과 큰 용기를 요구한다.
야곱은 속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인 '카파르'(kapar)를 사용했다. 그는 사실 자기 죄 때문에 형제 앞에서 속죄를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중재 없이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마침내 야곱은 자기 자신의 영혼 및 함께 씨름해야 할 하나님의 실재성 앞에 처하게 되었다.
엄청난 압박감이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 조상의 하나님을 대면하고 자신의 육적인 본성을 처리하며 자기의 사명을 생각하게 한 것처럼 마지막 때의 유대 민족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과 화해를 위한 고통이 이스라엘 자녀들의 변화와 영적 부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 이슬람-영적 전쟁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하늘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다음에 땅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중동의 갈등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주님께서 다루시고 계신 ‘세상 주관자들’중의 하나는 전 세계적인 권세와 영향력을 가진 세력인 이슬람의 영이다. 이 영은 중동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고 이제는 서구까지도 침투해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동의 갈등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확실히 존재하지만 이 갈등의 주된 배경은 영적인 것이다. 그 기원은 하늘의 영역에 속한 것이며 그 결과는 우리의 기도와 기름부음이 있는 영적 전쟁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주님은 지구상의 모든 족속과 나라, 민족으로부터 영혼을 추수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는 아랍 국가들로부터도 많은 영혼들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신앙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력이 정복되어야한다. 이 일은 정치적 수단이나 혹은 경제적 조약 같은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전투는 주로 영적인 것으로서 하늘의 영역에서 싸워 이겨야 할 전쟁이다. 전쟁은 중동의 평원과 산과 사막에서 벌어지겠지만 인간들의 일에 하나님의 긍휼과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열렬한 중보를 통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영적인 전장에서 기도하는 교회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생존과 아랍 대중을 향한 복음 선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21. 수건이 벗겨지다
아주 독특한 수건이 이스라엘 민족의 눈을 가리고 있다. 이 수건은 하나님의 목적 때문에 그들의 영적인 눈 위에 주권적으로 놓여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영적인 약속은 명백하고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 수건은 벗겨질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 눈멂이 제거되는 것으로서 이 일은 이스라엘이 주님께 돌이킬 때 이루어질 것이다. 1)첫번째 층-죄. 하나님의 진리를 보고 인식하지 못하도록 눈 멀게 하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층이 '원죄'임을 발견한다. 이 수건의 층이 벗겨지려면 온전한 복음이 충만하게 전파되어야 한다. 2)두번째 층-인간의 전통. 이 층은 수세기 동안 쌓인 랍비의 가르침과 인간적 전통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의 눈을 멀게 했다. 3)세번째 층-거짓 역사. 이 층은 유대민족에게만 속한 것으로서 이것은 이천 년 동안 그들의 잔을 채웠던 슬픔과 고난과 깊은 거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 층은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실로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앞에 놓여진 커다란 과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많은 사랑과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진리로 그 골수를 찌르며 죄를 깨닫게 하면서도 긍휼로서 오랜 상처를 치유해야한다. 이 일은 주님의 백성들 안에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 자신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수건을 녹이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사랑이다.
22. 거절의 견고한 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사실 때문에 특권과 명예와 함께 적대감과 거절당함의 쓴 잔을 들이켜야 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스라엘은 계속 배척당했고 거절당했으며 미움을 받고 공격을 받아왔다. 이웃 민족들과 주변의 왕국들과 세계적인 제국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약탈하며 노예로 삼으려고 시도했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포했다. 어거스틴이 가르친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했다'라는 잘못된 교리를 바탕으로 로마 제국의 반유대적인 법률이 반유대주의의 길을 닦았고 수 세기에 걸친 잔악한 행위들을 가져왔다. 3세기 이후 교회에게 영향을 주어온 이 잘못된 가르침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는 관계를 끊으신 것처럼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가르침들에 따르며 하나님의 모든 진노가 유대인들에게 부어졌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부어졌다.
이러한 배척과 소외의 견고한 진은 마귀에 의해 형성되었고 때때로 구별된 민족으로서의 부르심을 점차 흐려지게 해왔다. 이 상처는 이스라엘의 마음과 영혼속에 너무도 깊이 파고들어서 이 민족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자들을 향하여 의심하고 회의하게 하며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사실 이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눈멀게 했을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지 못하도록 가슴을 마비시켜 왔다. 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이다.
제 5 부 예언적 부르심
23. 교회의 응답
기진맥진하고 피투성이가 된 태인 이스라엘은 이제 쓰러지고 치워졌다. 생기가 가득하며 기름부음 받은 어린 교회는 하늘의 생명을 그 날개에 싣고 이방 민족들의 세계로 뻗어갔다. 그러면 늙은 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원히 버려지게 될것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오늘날 주님은 이 환상이 성취될 때까지 함께 이스라엘의 생명도 소망도 없이 메마른 뼈들에게 명령하는 선지자적인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주님께서는 그 지혜와 주권으로 예수의 참된 교회가 이스라엘을 그 중보의 태속에 품고 이 "역사의 아기"가 안전하게 탄생하기까지 산고를 치를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25. 룻-예언적 모태
참된 교회는 주님과 친근하게 연합될 때까지 영적 자손을 잉태할 수 없다. 지난 수 세기를 지나면서 교회는 여러 가지 다른 “남편”들과 간음과 같은 관계를 맺어왔고 자신을 더럽혔지만, 이제 마지막 시대가 될 때 참된 남편인 기업 무를 위대한 친족을 위하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생명을 잉태시키는 노고의 산실인 자궁을 빌리기 위해 오늘날 하나님이 친히 부르시는 사랑스러운 교회가 있다. 늙고 기진한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아들을 낳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들판에는 익어서 추수할 곡식이 풍성하다. 이 모든 일 가운데 보아스가 기다리고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즉, 보아스와 룻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안에서 혼인하여 조화를 이룰 때 그들은 한 새 사람의 세대를 낳을 것이다.
26. 에스더-중보하는 신부
에스더의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위하여 중보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를 매우 중요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도하는 교회가 희생적으로 담대하게 자기 위치를 지킬 때 성령은 명예를 얻으시고 경배를 받게 되며 사람들은 자유와 큰 기쁨과 빛을 즐거워한다. 그때 많은 이들이 큰 추수의 그물에 들어오고 주님에 대한 경외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집에 합류하게 된다. 우리는 주권적 왕이 어떻게 신부의 간청과 요청을 들어 주었는지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목적에 신실한 사람들을 위하여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는지를 볼 수 있다. 중보에 관한 이 교훈은 마지막 때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모든 처녀 중 가장 뛰어나며 왕위에 합당하게 준비되고 온전해진 신부는 최고의 주권자 앞에 서게 될 것이며 핍박 받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강력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보를 드리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이 다시 신부의 손에 놓이게 될 것이다
27. 라헬을 위하여 울지 말라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치유를 사기 위해 얼마나 큰 값을 치러야 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값이 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딸, 라헬은 전투 중에 씨로서 땅에 뿌려지고 죽었다. 이는 백 백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믿음은 이 어린 양의 희생이 이스라엘을 위한교회의 심장 안에 거룩하고 강력한 중보의 능력을 더해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분이 생각과 감정으로만 응답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이 진리로써 깨우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영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것인가? 그리고 중보할 것인가? 시간과 노력, 자원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투자할 것인가? 한 새 사람의 탄생을 위하여 수고할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것이 아닌것처럼 보이는 부담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당신의 비전을 확장시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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