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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타종교

[스크랩] 2. 각오(覺悟), 3. 걸식(乞食), 4. 결박(結縛)

아 푸른하늘 2013. 7. 19. 11:12

한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에 사용된 불교적 용어 <2>

 

임헌준(예은교회 목사, Ph.D) 

 

2. 각오(覺悟)

 

‘각오’라는 용어는 불교 경전에서 ‘잠에서 깨어나듯이 번뇌에서 벗어나 불교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이 용어는 주로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함’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예. 고생할 것을 각오하다).

 

한글 성경 개역개정판에서 이 용어는 2회 사용되고 있는데, 한 번은 누가복음 22:33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라는 베드로의 말 가운데 나타나고, 또 한 번은 사도행전 21:13의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는 바울의 말 가운데 나타난다.

 

누가복음 22:33에서 “내가 ...각오하였나이다”는 헬라어 ‘헤토이모스 에이미’를 번역한 것이다. 형용사 ‘헤토이모스’는 기본적으로 ‘준비된’(prepared)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 구절에서 ‘주격/남성/단수’ 형태로 사용되어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옥에도 가고, 죽는 데까지도 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헤토이모스 에이미’는 ‘나는 ...할 준비가 되어 있다’(I am prepared to....)는 뜻이며, ‘각오’라는 불교적 용어를 쓰지 않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 예로, 개역성경은 이 부분을 “내가 ....준비하였나이다”로 번역하고 있고, 공동번역은 “저는 ...좋습니다”로 번역하고 있다.

 

사도행전 21:13에서 바울의 말 가운데 들어 있는 “각오하였노라”는 형용사 ‘헤토이모스’의 부사형을 번역한 것이다. 부사형 ‘헤토이모스’는 ‘기꺼이’, ‘이의 없이’ 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 구절에서 ‘에고 ...헤토이모스’는 ‘나는 기꺼이 ...하겠다’(I am willing to...)는 뜻으로 누가복음 22:33에서와 마찬가지로 ‘각오’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도 번역할 수 있다.

 

 

3. 걸식(乞食)

 

불교계에서 ‘걸식’이라는 용어는 출가 수행자가 집집마다 들러 음식을 얻어다 생활을 영위하는 고타마 싣닷타 이래로 오랫동안 이어져온 불교의 생활법이자 수행법을 가리키며 ‘탁발(托鉢)’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이 용어는 단순히 ‘음식을 남에게 빌어먹음’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한글 성경 개역개정판에서 이 용어는 1회(시 37:25) 사용되고 있다. 시편 37:25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다”에서 “걸식함”은 히브리어 ‘므박케쉬 라헴’을 번역한 것이다. ‘므박케쉬’는 ‘찾다’, ‘구하다’, ‘요구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빠카쉬’의 ‘Pi./분사’ 형태로서 ‘구걸함’, ‘빔’을 뜻한다. 그리고 ‘라헴’은 ‘떡’, ‘빵’, ‘음식’ 등을 뜻하는 명사 ‘레헴’의 ‘남성/단수’ 형태로 ‘므박케쉬’와 함께 ‘먹을 것을 빔’을 뜻한다. 그러므로 개역개정판의 ‘걸식함’을 ‘빌어먹는 것’ 또는 ‘얻어먹는 것’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4. 결박(結縛)

 

우리말에서 ‘결박’은 ‘몸이나 손 따위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단단히 동이어 묶음’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심신을 속박하여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결박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는 한글 성경 개역개정판에서 67회(구약 40회, 신약 27회) 쓰이고 있다. 개역성경에서는 구약 39회, 신약 28회 쓰이고 있는데 개역개정판과 횟수에서 차이가 나는 까닭은 이사야 22:17의 경우 히브리어 동사 ‘아타’의 ‘Qal.능동태 분사/2인칭 남성단수 접미’ 형태인 ‘오트카’를 ‘개역성경은 ‘너를 속박하고’로, 개역개정판은 ‘너를 결박하고’로 번역하고 있고, 마태복음 22:13의 경우 헬라어 동사 ‘데오’의 ‘분사/제1단순과거/능동태/주격/남성/2인칭/복수’ 형태인 ‘데산테스’를 개역성경은 ‘결박하여’로, 개역개정판은 ‘묶어’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역개정판에서 ‘결박’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들은 구약의 경우 40회 가운데 히브리어 동사 ‘아싸르’(묶다, 가두다)에서 온 것이 29회, 동사 ‘아카드’(묶다, 매다), ‘짜아’(웅크리다, 구부리다), ‘라타크’(묶다, 매다), ‘아타’(쥐다, 감싸다, 가리우다)와 동사 ‘아바트’(감다, 짜다, 엮다)에서 유래한 명사 ‘아보트’(끈, 밧줄), 성서외어(聖書外語)에서 유래한 명사 ‘하르쭙빠’(끈, 족쇄, 차꼬)에서 온 것이 각 한 번씩 6회, 아람어 동사 ‘케파트’(묶다, 얽매다)에서 온 것이 5회이다.

 

신약의 경우 27회 가운데 헬라어 동사 ‘데오’(묶다, 동이다) 계열에서 온 것이 24회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동사 ‘데오’에서 온 것이 17회, 이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 ‘데스모스’(굴레, 묶는 것, 끈)에서 온 것이 6회, 명사 ‘데스모스’에서 유래한 동사 ‘데스뮤오’(묶다)에서 온 것이 1회이다.

 

그리고 2회는 마가복음 3:27과 이 본문의 평행구인 마태복음 12:29에서 번역자가 각 1회씩 덧붙인 것이다. 이 본문의 헬라어 성경에서는 동사 ‘데오’의 ‘가정법/제1단순과거/능동태/3인칭/단수’ 형태인 ‘데세’가 각 1회씩만 쓰이고 있지만, 한글 개역개정판과 개역성경에서는 번역자가 본문을 풀어서 번역하며 ‘결박’을 1회씩 덧붙여 2회씩 쓰이고 있다.

 

나머지 1회는 헬라어 동사 ‘뤼오’(풀다, 놓아주다, 해체하다)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사도행전 22:30의 경우, ‘풀다’(to loose), ‘놓아주다’(to release), ‘해체하다’(to dissolve)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동사 ‘뤼오’의 ‘직설법/제1단순과거/능동태/3인칭/단수’ 형태인 ‘엘뤼센’이 강조형 대명사 ‘아우토스’의 ‘목적격/남성/3인칭/단수’ 형태인 ‘아우톤’을 목적어로 하여 사용되고 있다. ‘엘뤼센 아우톤’은 ‘그가 그 사람을 풀어주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개약개정판에서 “(천부장이) 그 결박을 풀고”로 번역한 것이다.

 

한글 성경 개역개정판에 67회 쓰이고 있는 ‘결박’이라는 용어를 동사는 ‘묶다’, ‘동이다’, ‘옭아매다’, ‘가두다’ 등으로, 명사는 ‘끈’, ‘밧줄’, ‘오라’(죄인을 묶던 붉고 굵은 줄), ‘굴레’, ‘멍에’, ‘묶는 것’, ‘메인 것’ 등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그 좋은 예를 개역개정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22:13의 경우 개역성경에서는 “그 수족을 결박하여”라고 번역한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그 손발을 묶어”로 번역하고 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3:27의 경우, 개역개정판에서는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에 비해 새번역에서는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것이다.”로 번역하고 있고,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는 “또 누가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털어 가려면 그는 먼저 그 힘센 사람을 묶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그 집을 털 수 있을 것이다.”로 번역하고 있다.

 

(크리스챤신문. 2005. 2. 7)

http://www.cwmonit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51

 

출처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글쓴이 : 임헌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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