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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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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푸른하늘 2007. 11. 18. 13:13
용서
 
 
미국 역사상 스탠톤(Stanton)처럼 아브라함 링컨을 모욕한 사람은 일찌기 없었다고 합니다.
 "저급하고 교활한 어릿광대" "고릴라의 원종"이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 스탠톤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였읍니다. 링컨은 최대의 예절로 그를 대해주었읍니다. 세월이 흘러 링컨대통령이 극장에서 암살자의 흉탄에 맞아 쓰러져 그 유해가 안치된 좁은 방에서 제일 많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사람이 스탠톤장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링컨대통령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여기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제목:용서
 
오래 전에 영국교회에서 뉴우질랜드에 헌신적인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몇해 동안 힘써 일하고 성공한 후에 그는 어느 안식일에 야만인 생활로 부터 개심한 지 얼마 안되는 한 지방에서 성찬식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가 성찬식을 인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교회의 반대편으로 황급히 갔습니다. 그러더니 곧 돌아와서 조용히 제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성찬식이 끝난 후 목사가 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내가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할 때. 나의 아버지를 죽여서 그 피를 빨아먹은 이웃 종족의 추장이 바로 내 다음 사람임을 알아챘습니다. 나는 모든 신에게 그 사람을 처음 만날 때에 죽이기로 서약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복수해야겠다는 충동이 거의 나를 압도하여. 선교사님이 보다시피 그 힘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돌진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님이 십자가 상에 달리실 때 자기를 못박는 자를 위해서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시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있는지 모르고 있나이다."라고 기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나는 나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옆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참된 용서가 가능한 것입니다.

 제목:용서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태도를 온화하게 하고 분쟁을 완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어찌 되었든, 다툼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100년 전에 일어났던 어떤 일을 읽을 때 더욱 강조되어졌다. 영국 런던의 침례교 목사인 찰스 스펄전에게는 「예수님께 나아오라」는 책을 쓴 뉴먼 홀이라는 설교가 친구가 있었다. 다른 설교가가 홀을 조롱하는 기사를 내자, 홀은 잠시 동안 참다가 그 기사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가자 그는 항의 편지를 썼다.
 그의 편지는 그를 공격한 기사를 능가하는 앙갚음조의 독설로 가득 차 있었다. 편지를 보내기 전에 홀은 스펄전 목사님께 그것을 가져와 의견을 구했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스펄전 목사님은 그것을 돌려주며, "훌륭하군요. 그렇지만 한 가지 잊어버린 것이 있으시군요. 마지막 서명하시기 전에 '예수님께로부터 온 사람' 이라고도 적으셔야지요" 했다. 이 두 하나님의 사람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홀은 그 편지를 찢어버렸다.

 제목:용서
 
 
용서는 근본적으로 단순한 형태의 기적입니다. 용서는 새출발입니다. 용서는 당신에게 고통을 가한 사람과 함께 새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예로 들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때 그분은 우리의 손을 잡고 그분과 함께 다시 시작해볼 것을 말씀하십니다. "와서 내 손을 잡아라. 다시 너의 친구가 되겠노라. 모든 일이 어떻게 되었든 너와 함께 있고자 한다. 나는 네 위에. 네 아래. 그리고 네 안에 사랑의 힘으로 있고싶다. 나는 네가 하는 일을 나의 방식대로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 시작해보자." 이것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이며 그분은 우리가 만든 장벽을 헐어버리고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오셔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용서의 기적은 새로운 시작을 창조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상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를 없애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고통을 함께 하면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당신이나 가해자 모두가 서로 상처입은 것이므로 고통을 함께 하는 그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출발일 뿐 종착역이 어디인지 아무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미래가 더 많은 고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 많이 자백하고.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더 많은 고통을 나누십시오. 그리고 새출발을 하십시오. 우리는 결코 정지해서는 안 됩니다.

 제목:용서
 
 
내 아들 폴이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어느 날. 나에게 청년회 집회를 가기 위해 차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새 차를 몰고 650킬로나 떨어진 수련회장에 갈 수 없을거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래도 자꾸만 차를 쓰게 해달라고 조르자. 나는 쏘아붙였다. "이제 그만 조르렴. 한 번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야지. 자꾸 조르지 말아라." 폴은 자기의 청이 거절되자 화가 치밀어 있었다. 그래서 문이 왜 열리지 않는가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만 문을 발로 찼다. 나 또한 꽝하는 문소리를 듣자마자 속에서 화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내 이 녀석을 손봐주리라. 생각하여 나는 폴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하고 계속 주방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조용하고 온유하면서도 단호하게 나를 제지하시고 내 마음속에 이러한 말씀을 속삭여주셨다. "아비들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눈깜빡할 사이에 나는 화를 누그러뜨렸다. 나는 정원으로 나가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아들 녀석에게 저지른 소행을 용서해달라고 아뢰었다. 나는 사십분 뒤에 거실로 돌아와서 폴의 방으로 향했다. 폴은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머리를 쥐어잡은 채로 침대 모서리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사십분이 지나서야 화를 누그러뜨린 셈인데. 그애 역시 울고 있었다. 나는 폴 옆에 앉아서 나즈막히 말했다. "폴. 내가 죄를 졌구나. 애비라고 하면서 너를 노엽게 했다. 하지만 내가 너를 아낀다는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나는 자동차 열쇠를 그애 손에 쥐어주었다. "수련회에 가라." 그 애는 그 수련회에 참가하여. 그곳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용서는 풀어놓아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과 똑같이 용서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제목:용 서

 한 젊은 부인이 어느 골목에서 어떤 청년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즉시 현장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생긴 사람입니까? 어서 말해 보세요"
 부인은 정신없이 외쳤다.
 "곱슬머리예요. 곱슬머리!"
 그때 마침 그곳을 우연히 지나가던 곱슬머리 청년 하나가 의심을 받고 경찰에 연행 되었다.
 뒤늦게 경찰서로 달려온 부인의 남편은 너무나 분하고 원통하여 들어서자마자 곱슬머리 청년을 두들겨 팼다. 길길이 뛰며 틈도 안주고 사정없이 내려 치는 부인의 남편을 그때 경찰이 말리지 않았다면 청년은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며칠 후, 곱슬머리 진짜 범인이 잡혔고 이 청년에게는 아무 죄가 없음이 밝혀져 풀려나게 되었다.
 "내 이놈들을 그냥 두나 봐라! 죄도 없는 나를 두들겨 패?"
 곱슬머리 청년은 이를 갈며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칼을 사서 가슴에 품고 눈을 부릎뜨고 `복수! 복수!' 하는 아들을 그의 어머니가 보았다.
 "얘야,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잖니. 그런데 복수를 하겠다니..."
 "너무 억울해서 그래요. 그놈을 기어코 죽이고 말 거예요."
 "모르고 그랬쟎니?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사람들까지도 용서 했쟎니!"
 "어머니, 말리지 마세요. 나는 너무 억울해요."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둘이 키려고 애를 썼지만 아들은 막무가내 였다."
 어느 날 밤, 이상한 소리에 곱슬머리 청년이 잠을 깼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 였다.
 "하나님, 제발 제 아들의 마음을 돌이키셔서 원수를 사랑하게 하소서."
 어머니는 몇날 며칠을 아들을 위해 눈물로 밤을 새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소리를 한참 듣던 아들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뛰어가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 그 동안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울음을 거두세요.
 엉엉엉"
 "오냐 오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그러면서도 두 모자는 한참동안이나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또 한사람이 뛰어 들어와 두사람을 함께 끌어안고 통곡을 터트렸다.
 봉변을 당한 여인의 남편, 청년을 두들겨 팼던 사람이다.
 "난 틀림없이 당신이 복수를 하기 위해 나를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내가 먼저 당신을 없애 버릴려고 오늘밤 숨어 들어온 것입니다...그런데 으흐흑!" 자, 이 칼로 당신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제는 이 칼로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의 남편은 품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날이 선 칼을 꺼내 놓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을 안 세 사람은 다시 한번 끌어안고 이번에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방바닥에는 두개의 칼이 번득이고 있었다.
 
 제목:용서

 김구 선생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일이다.
 일본인 헌병이 한국 청년을 수배해서 김구 선생을 암살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청년은 얼마 안 가서 붙잡혔고, 사람들은 청년을 처형하기 직전에 김구 선생에게 데리고 왔다.
 "당신을 암살하려던 청년을 붙잡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김구 선생은 그 자리에서 이 청년을 용서해 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청년을 붙들고서 "내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한국 청년을 여기서 만나니 실로 감격스럽다"고 했다.
 자기를 암살하려고 권총을 들었던 그 청년을 부둥켜안고서 기뻐하였다.
 그러자 이 청년은 이러한 김구 선생의 인품에 감동이 되어서 나중에는 독립군으로 끝까지 충성을 다하며 헌신했다고 한다.
 관용을 베풀면 완악한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놀라운 힘이 된다.
 그런데 용서를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은 가장 가까운 자녀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부부간에도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다보니, 용서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목:용서
 
 
어느 영국 사람이 대서양을 건너서 뉴욕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식사 시간이 되면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그는 가진 돈이 없기때문에 음식을 사먹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슬그머니 갑판으로 나와서 싸 가지고 온 비스켓과 치즈를 먹곤 하였읍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허기진 상태가 되었읍니다. 어느날 선장은 식사 시간만 되면 혼자 갑판위에 앉아있는 그에게 "왜 당신은 식사시간만 되면 여기서 비스켓만 잡수십니까?"물었읍니다. 그는 "선장님, 저에겐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먹을 돈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힘없이 대답하였읍니다. 그때에 선장이 하는 말이 "당신이 이배를 탈때 사둔 승선비속에는 이미 식사대금이 모두 포함되어 있읍니다. 마음놓고 가서 잡수십시요"라고 알려 주었읍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식당을 이용했고, 겨우 한끼의 음식을 먹으니 미국에 도착하였다는 일화가 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때에 이미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제목:용서
 
 
우리 첫 아이 빌립은 대단히 영리하면서도 늘 주눅드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세 살 때 한글을 다 읽는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용기나 감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학년 때까지 선생님의 출석부름에 "네" 소리를 못했습니다. 그즈음 우리부부는 빌립에게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빌립에게 저는 빌립이 태어나기 전의 사정들과 잉태되었을때에 했던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빌립아. 아빠를 용서해주겠니."하고 물었습니다. 빌립은 그런 이야기가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 않고 "네. 알았어요.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학위 논문 쓴답시고 서너 살 된 빌립을 책상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던 것들도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네"라고 대답하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그후에 빌립은 현저히 바뀌어갔습니다. 지금 아직국민 학생인데도 열심히 체육관에 저 혼자 뛰어가고, 학교에서 부장인지 회장인지 한다고 왔다갔다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교회에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용서를 하는 것도 사람을 자유케 하지만, 용서를 청하는 것도 사람을 자유케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졌을 때는 용서를 비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것은 결코 신경과민도, 비겁도 아닙니다. 또 잘못을 범하기 위한 습관성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나를 용서 하십시오"라는 말을 생활화하십시오.

 제목:용서
 
 
어느 날. 나는 필리핀. 파나이 섬의 이로이로시에서 그 건너편에 있는 자그마한 섬 기마라스로 가기 위해 작은 돛단배를 탔다. 기마라스에는 .선한목자 고아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일본군에 의한 학살 사건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 고아원에는 오후에 학교에 나가는 16―17세 정도의 한 소년이 있었는데 내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말을 걸어왔다. 소년은 내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는 "미국 사람이지요."라고 물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난 일본 사람이란다." 지금껏 유쾌하게 얘기하던 소년이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리곤 내 얼굴을 쏘아보았다. 정말 순식간에 소년이 돌변해버렸다. "내 아버지는 일본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니까 난 너를 죽여버리겠어." 나는 소년의 손을 잡아 내려놓으면서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게 말했다. "부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해주렴. 물론 용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우리 일본 사람들을 용서해주고 모든 것을 잊어줄 수 없겠니." 소년은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고아원의 저녁 집회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섬을 떠나야 했으므로 나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원장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올랐다. 그때 별생각없이 맞은 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건물 안쪽에서 한 소년이 자동차를 향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왔을 때에 나는 지난 밤의 그 소년임을 알았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소년은 "목사님. 저는 일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저 같은 녀석도 예수님께서 용서해주셨기 때문이지요." 소년은 떨리는 음성으로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나는 그때 그 소년의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드디어 시동이 걸린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소년의 손을 꼭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이라고 축복을 구했다.

 제목:용서
 
 
내가 아는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자신이 용서받은 체험으로 인하여 그의 사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는 너무도 자존심이 강해서 교인들 중의 누가 자신보다 더 신령하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교회 초신자들 중의 한 명이었던 필리스라는 여인은 대단한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다른 교인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이 목사님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 목사님은 주일 저녁예배 시간 중에 그녀에게 회심에 관한 간증을 하라고 한 뒤부터 화가 났다. 그녀의 간증 내용 자체 때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훌륭한 설교라고 칭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영적으로 그녀보다 우수하며 사람들은 자기를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그녀가 정말로 영적인 일들에 관해 별로 모른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노렸다. 필리스는 초신자였지만 마침내 목사님과 대면을 청했다. 그녀는 사랑 속에 갈등을 품고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목사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제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같은 편이니까요." 그녀는 또 목사님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두 시간 반 동안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비굴했었는지 깨닫고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했다. 이 초신자는 목사님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드렸다. 그는 순전한 사랑 안에서 용서를 받았으며 자신의 사역을 가로 막았던 경쟁심과 시기심을 고백했을 때 그는 다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뿌듯한 해방감인가. 수 개월도 안되어 전 교인은 새로운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그의 설교도 더 나아졌다. 그의 부당한 싸움을 관대하게 품어주었던 필리스의 사랑의 영이 그가 갖고 있던 나쁜 감정을 덜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제목:용서된 자아
 
 
비행기가 추락하면 모든 관심은 '작은 블랙 박스'에 쏠리게 된다. 이것은 사고 당시 조종사가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이 녹음되어 있는 방충, 방화,방수의 금속상자를 말한다. 이것을 검사관들이 확인해 가지고 정확히 누가 잘못했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 안에 운항기록기 같은 장치를 설치해놓으셨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을 그대로 정확히, 그리고 지워지지 않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양심도 이것의 한 부분으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에 오래 시달리는 것도 양심의 이런 역할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용서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죄책감이란 가장 파괴적인 존재일 것이다. 또한 죄책감은 우리의 모든 인격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가 죄책감을 버리고 참 용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그곳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등이다(사 53:6, 벧전2:24). 우리는 더이상 죄책감이나 정죄함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책감과 용서하지 않은 자아를 제거할 수 있기까지는, 죄책감에 붙들린 어린아이의 고통에서 벗어나 성숙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제목: 용서를 받은 사람
 잘알려진 세속적 휴머니스트이며 소설가인 마가니타 레스키는 1988년 죽기 얼마 전 텔레비젼에 나와 이렇게 솔직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당신네들 기독교인인들에 대해 가장 부럽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들이 용서함을 받았다는 거예요. 내게는 나를 용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요"

 제목: 용서받지 못할 자
 
 
최근에 서부해변의 목사님이 교인에 대하여 그들이 주어진 권세를 사용치 않음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권능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책을 편집하였다. 그들에게 "주일에 집에 머무르는 성도는 용서받을 수 없을진대"란 제목으로 다음 내용을 우송하였다. 그 용서받지, 못할 자는 아래와 같은 사람들이다.
 첫째, 주일이 잠잘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하여 잠자는 오두막이 필요한 사람
 둘째, 토요일 저녁 TV프로그램을 시청하느라 눈이 빨갛게 충혈된 TV광으로 눈약이 필요한 사람
 셋째, 교회에 나오면 지붕이 내려앉아 함몰당할 것 같아 강철헬멧이 필요한 사람
 넷째, 교회가 너무 차겁다고 생각되어 이불이 필요하거나 너무 뜨겁다고 여겨져 선풍기가 필요한 사람
 다섯째, 모든 이중신자를 적어두려고 타인의 점수를 매기고 있는 사람
 여섯째, 성탄절의 꽃 포인세티아와 부활절의 꽃 백합으로 장식된 성전만을 보았으므로 그것들이 없는 성전은 생각할 수 없는 사람.

 제목: 용서와 기도
 
 
여러 해 전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이 한 수양회에서 여러 목사. 선교사들 앞에서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끝난 후 그의 한 간사는 그가 메시지에서 다른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도슨은 메시지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바로 전날 그런 잘못을 범한 사람이 전한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도슨은 즉각적인 용서를 믿었고. 이에 그의 강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를 거리낌없이 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대의 요청"이라는 메시지인데 오늘날도 책자와 테이프에 수록되어 널리 배포되고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과 신선함으로 가득찬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백하기만 하면 그 즉시 우리는 죄를 결코 범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합니다. 우리는 거리낌없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기며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이나 사죄가 필요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돌이키기 위해 자기 생각에 다른 자책이나 정죄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더 풍성히 흘러 넘치는 그분 은혜―값없이 베푸시는 사랑의 태도와 행동―로 말미암아 자유롭습니다.
 효과적인 기도. 워렌 殷마이어즈 부부

 제목: 용서와 사랑의 힘
 
 
내 친구 중에 리 바브라는 목사님이 한 분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슬픈 일이 닥쳤습니다. 그의 형제에게 원한을 품은 어떤 사람이 형제를 살해한 것입니다. 살인자는 곧바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습니다. 물론 내 친구 목사님은 그를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언젠가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 살인자를 용서하고 증오심을 극복하기까지는 거의 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 목사님은 감옥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간수의 반응은 목사님이 살인자에게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목사님은 그들을 설득시켜서 감옥 소장과 힘이 센 간수 한 사람을 대동하고 면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죄수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내가 당신을 용서했으며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당신이 허락한다면, 매주 한 번씩 면회와서 성경을 읽어 드리고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놀랍게도 그 후 죄수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제는 감옥 안에서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용서와 사랑의 힘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랑, 밀가루와 같습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제목: 용서의 기회
 
 
옛날 쌕손 왕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라에 반역도들의 난리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임금이 직접 많은 군대를 끌고나가서 반역의 평정을 위해서 싸웠다. 원래 훌륭한 임금이었기 때문에 곳에서 싸워 이기고 마침내 반역도들의 난리를 퇴치하고 평화를 이루어 놓았다.
 승리를 거두고 왕궁으로 돌아온 임금은 한가지 특별한 일을 명령했다. 다름이 아니고 전국에 널리 알려서 임금이 왕궁의정문에다 촛불을 켜서 놓아두는 동안에 반역음모에 가담했던사람은 누구든지 자수를 하게 한 것이었다. 그 촛불이 타고있는 동안에 한하여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제목:용서의 능력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강물은 육지의 여러 곳을 통과해 오는 동안 온갖 더러운 쓰레기와 폐물, 오물과 배설물, 세균과 독극물 등으로 오염될대로 오염되어 바다로 흘러들어오나 바다는 그 더러운 것들을 하나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들여 짠 염수로 정화하여 깨끗한 해수로 만들어 버린다. 이와 같이 인간 세계 각계 각층에서 생성되는 모든 죄라 해도 하나님의 넓은 은혜의 바다로 들어오기만 하면 자비라는 염수로 깨끗이 정화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염수로 만들어 버리신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더러워진 육신의 생각을 세상적인 지식이나 교양이나 덕망으로 정화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깊이 뛰어들어 자비의 염수로 정수되도록해야 한다. 육신의 골짜기에서 더러워진 영혼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그 영혼의 대해에는 자비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제목: 용서의 복음
 
 
세계적 설교가였던 캠벨(Campbell)의 신앙간증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는 2차 대전 중에 참전하였는데 무훈을 인정받아 은성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젊은 캠벨은 자기가 죽인 17세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 어린 군인의 얼굴이 계속머리에 떠올라 고민하게 되었다. 자기 연대의 군목 3명이 있었는데 그는 첫번째 군목을 찾아가서 "훈장이 무슨 의미가 있읍니까? 저에게 대답해 주십시요"라고 질문하였다. 군목은"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시오"라고 대답했다. 즉 그런일을 가지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훈장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돌려 줄 수도 있지 않소? 하는 답변이었던 것이다.
 캠벨은 그런 답변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두번째 군목을 찾아갔다. 군목은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라고 소리쳤다. 이 말은 전쟁에서 죽은것쯤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 더 용감해지리라는 말이었다. 청년 캠벨은 마지막 군목을 찾아갔다. 군목은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고 청년의 고민을 다 듣더니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껴안았다. 그는 군목과 함께 한참동안 울고나서 아무런 대답을 들을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 군목실을 나왔다. 문을 나서는 순간 군목이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 당신을 이미 용서하셨읍니다" 캠벨은 그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을 실감했고 비로소 안심을 얻었다고 한다. 용서의 복음만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용서의 사자가 되어 우리에게 오신 분이다.

 제목:용서의 사랑
 
리챠드 범브랜드 목사가 약 30명의 크리스천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감옥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밀쳐 던져졌는데, 침침한 감방 속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지나갔다. 감방 속의 모든 크리스천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비밀경찰의 대위였다.
 그가 왜 감옥에 들어 왔는지 너무나 의아해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얼마전에, 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 보내라고 했다. 수줍어하며 자기의 사무실에 들어 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져 있었다. 소년은 입을 열어서 말을 했다.
 “대위님, 당신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체포해 가신 분이에요. 오늘은 우리 엄마의 생일이에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 왔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나에게 늘 가르쳐 주시기를,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이 꽃으로 대위님의 애기들의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이 꽃다발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대위는 그 소년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년을 부둥켜 안고 눈물로 울었다고 했다. 그 후로 그의 마음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왔고 남은 일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제목: 용서의 삶
 
 
김구 선생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실때에 일본인 헌병이 한국 청년을 매수해서 김구 선생을 암살하도록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얼마 안 가서 붙잡혔고, 사람들은 청년을 처형하기 직전에 김구 선생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당신을 암살하려던 청년을 붙잡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김구 선생은 그 자리에서 이 청년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청년을 붙들고서 "내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한국 청년을 여기서 만나니 실로 감격스럽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암살하려고 권총을 들었던 그 청년을 부둥켜안고서 기뻐하자 이 청년은 이러한 김구 선생의 인품에 감동이 되어 독립군으로 끝까지 충성을 다하며 헌신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남에게 관용을 베풀면 관용을 베푼 만큼 나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관용은 완악한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이었다

제목: 용서의 신비

  .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 혹독한 고문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다.
 그녀가 용서의 메세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느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다.

 제목: 용서의 윤리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이 선생님이 길을 지나가다가 잘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웨슬레이가 잘 아는 친구와 사이가 나빠져서 서로 욕하고 저주하며 원수로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웨슬레이 선생은 그에게 "형제여, 아직도 그 친구를 미워합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럼요" 당연하듯 대답했습니다. "이제 웬만하면 용서하시지요"하고 화해를 권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를 갈면서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해도 그놈만은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고 욕을 하더랍니다. 그러자 웨슬레이는. "좋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은 절대로 죄 지으면 안됩니다." "왜요?" "그렇게 남을 용서하지 못하니 당신도 용서받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당신은 죄 지으면 안됩니다"라고 따끔하게 일렀습니다. 그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 속에서 무엇인가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물론 죄를 지었습니다만 앞으로도 죄 지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아무리 맹세하고 결심해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죄 지을 생각을 조금 해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말은 용서받을 여유를 두라는 뜻입니다. 과거의 죄를 용서받을 때에도 내가 남의죄를 용서해야 용서받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남의 죄를 많이 용서할 수 있어야 앞으로 내가 지을 죄도 용서받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내가 회개할 때에 그 속에 겸손의 윤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제목: 용서의 이중성

 최근 과거의 불의에 대한 (5공 청문회에서)용서의 문제가 전국을 논쟁의 와중으로 이끌고 있다. "용서하자"라는 주장과 자기의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명백하다.
 성경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용서에는 한계가 없으며 용서해 주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요 책임임을 선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이 자신의 죄에대하여 깨닫기도 전에 이미 용서를 선포해 놓으셨다. 인간에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를 빌러오기전에 이미 선포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사과하러 오기도 전에 용서해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성서적인 용서관이다.
 그러나 용서가 용서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용서의 선포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용서받아야 하는 자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죄악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인정이다. 용서하기도 쉬운일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사람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과 인정, 즉 회개가 없이는 용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차대전중에 처형당한 독일의 본회퍼복사는 제자의 길에서 용서의 은혜에 대하여 이러한 관계를 잘 설명하였다.
 회개함이 없는 용서는 값싼 싸구려 은혜라고. 성경에서 인간을 향해 용서를, 죄사함을 선언하였으면서도, 그 댓가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으면서도, 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가치가 회개함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성경도 용서를 선포하였을 것이다. 이 용서는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귀중한 은혜이며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 은혜와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용감하게 신인하고 또한 그것을 정녕 가슴아파하는 사람이다. 우선적으로 선언되는 용서, 그리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모든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리라고 믿는다.


 제목: 용서의 철학
 
 
브라디라는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1882년에 프레데릭.카벤다쉬와 토마스.버크를 찔러 죽인 죠셉.브라디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범죄를 경찰에 고발한 사람을 용서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형제와 친구들,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브라디를 면회하고는 마음에 미움을 버리고,천국에 갈 것을 권면했지만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이해하고 자신도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자인까지 했지만 결코 자기를 고발해서 잡히게 한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갈파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형이 집행이 될 바로 그 전날,한 이름 없는 수녀가 면회를 요청하여 왔습니다. 수녀는 감방에 홀로 들어갔습니다. 수녀는 브라디에게 닥아서면서, 이런말을 했습니다. "브라디씨,나는 어떤 사람을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사실 나의 신앙에도 크게 영향이 되는 이 일은 도무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수녀에게도 그런 일이 있습니까?" 브라디의 눈빛이 빛났습니다. 수녀는 조용히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를 용서해야 되겠다고 다짐하여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를 기회만 있으면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만 더해갑니다. 정말 어쩌면 좋겠습니까?" 수녀는 정중하게 문의했습니다. 브라디는 제법 대견하게 대답했습니다.
 "안되지요. 용서하는데는 까닭이 없지요. 그냥 마음을 풀어 버리면 되는게 아닙니까?" "그게 안되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도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하고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천만에,그러지 마시오. 용서할 수 있도록 좀 더 힘쓰셔야죠!" 이때 수녀는 브라디의 손을 잡으면서,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뵈닉스 공원에서 버크를 죽인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는 바로 나의 오빠입니다." 그러자 브라디는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 큰 눈을 한참 감고 있더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를 고발한 사람을 지금 용서합니다. 이제는 마음이 후련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앙의 평화를 체험하고 브라디는 조용히 숨을 거뒀던 것입니다. 용서의 철학은 이렇게 강하게 지금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목:용서하고 사랑하라
 
마18:21-35

 보우그라는 마을에 우고린이라는 본성이 착한 곱추가 살고있었다. 그는 모든 동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우고린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그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여서 소랑케라는 그의 누이와 함께 살았다.
 그의 누이 소랑케가 어느 날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얼마후 석방되었을때 불구인 동생이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직장을 얻을수가 없어 그녀의 몸을 팔아 동생의 약값을 대었다. 어느 날 우고린은 몰지각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였다. 그들은 우고린을 넘어뜨리고 그를 중심으로 춤을 추면서 "네 누이의 연인들이 각각 한 프랑씩을 지불했다."라고 조소하며 그를 모욕하였다. 그 때 그 동리의 나이많은 한 신부가 와서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우고린을 구해주었다. 그 다음날 그 곱추는 모멸감과 치욕을 참을수 없어 강에 뛰어들에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누이 소랑케는 총으로 자살하였다.
 그 늙은 신부는 "이 어린 것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비가 없는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라고 비통하게 말했다. 장례식때 교회가 가득 찼다. 그 신부는 강단에서 추도 설교를 하면서 통곡하였다.
 "기독교인들이여, 생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나에게 너의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에게 네 양이 어디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들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였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동정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내적 확신의 외적 표출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여러분 속에 용서의 영이 없다면 여러분은 용서를 받았을 리가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엄숙하고 심각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하는 여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아니하는가로 선언하는 셈이 된다. 만일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우리들의 날]피에르 판 파센 著-

 제목: 용서하고 사랑하라
 
성구:마18:21-35
 발췌:[우리들의 날]피에르 판 파센 著
 
 보우그라는 마을에 우고린이라는 본성이 착한 곱추가 살고있었다. 그는 모든 동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우고린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그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여서 소랑케라는 그의 누이와 함께 살았다. 그의 누이 소랑케가 어느 날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얼마후 석방 되었을때 불구인 동생이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직장을 얻을수가 없어 그녀의 몸을 팔아 동생의 약값을 대었다. 어느 날 우고린은 몰지각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였다. 그들은 우고린을 넘어뜨리고 그를 중심으로 춤을 추면서 "네 누이의 연인들이 각각 한 프랑씩을 지불했다."라고 조소하며 그를 모욕하였다. 그 때 그 동리의 나이많은 한 신부가 와서 그들을 물러가게하고 우고린을 구해주었다. 그 다음날 그 곱추는 모멸감과 치욕을 참을수 없어 강에 뛰어들에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누이 소랑케는 총으로 자살하였다. 그 늙은 신부는 "이 어린 것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비가 없는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라고 비통하게 말했다. 장례식때 교회가 가득 찼다. 그 신부는 강단에서 추도 설교를 하면서 통곡하였다.
 "기독교인들이여, 생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나에게 너의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에게 네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들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였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동정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내적 확신의 외적 표출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여러분 속에 용서의 영이 없다면 여러분은 용서를 받았을 리가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엄숙하고 심각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하는 여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아니하는 가로 선언하는 셈이 된다. 만일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제목: 용서하는 마음

 몇 해 전에 집회를 열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때 한 교회에 다니던 장인과 사위가 여러 해를 두고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주일날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참석하지만 장인은 이쪽에. 사위는 저쪽에 뚝 떨어져 앉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단 앞으로 나와 주님을 영접하라는 초대를 했을 때 나는 이 쪽에 앉은 장인이 발끝을 들고 살그머니 일어나 무리 저쪽에 앉아있는 사위를 쳐다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위 쪽을 얼른 바라보았더니 사위 역시 모인 무리의 머리 너머로 장인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장인이 통로를 따라 내려와 설교단 앞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뒤따라 사위도 다른 통로를 걸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설교단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치자 그들은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서로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채 악수를 하기도 전에 그만 두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두 사람 사이의 모든 난관을 뿌리치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놀라운 부흥의 물결이 홍수가 일듯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장벽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용서할 줄 모르는 마음을 지니고 계신다면 그로 말미암아 많은 다른 이들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목: 용서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남매가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격한 감정으로 대립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고 뛰어왔다.
 "오빠가 먼저 싸움을 걸었어요."
 누이동생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쟤가 먼저 시작했어요."
 오빠도 큰소리로 말했다. 두 아이의 말을 다 들은 어머니는 손을 잡고 이렇게 달랬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고 싶지 않단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누가 먼저 그만두려 하는가, 누가 먼저 화평한 사람이 되는가 하는 점이란다."

 제목: 용서하는 사랑
 
 
한 상습적인 탈영병이 있었다. 그는 용감하고 늠름한 청년이었지만 웬일인지 규칙적이고 조직적인 군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탈영을 했던 것이다. 그는 붙잡히면 탈영을 하고 또 붙잡히면 다시 기회를 노려 탈영하는 일을 되풀이하다가, 형량이 점점 늘어나서 드디어 사형 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처음에 그가 저지른 죄목은 탈영한 것뿐인데 사형까지 받게 되니 재판장의 마음은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사형을 언도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이 청년이 사형을 받게 되기까지의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들은 이 사람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교육을 시켰으며 매질도 했고 고생도 시켰으며 심지어는 간곡히 사정도 해보았습니다만 그는 기어이 좋은 군인이 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라고 침통해하며 말했다. 그때 탈영병의 친구 한 사람이 일어서서 "재판장님, 그 동안 이 친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은 잘 압니다만 한 가지 시도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용서를 한 적이 없었다.

 제목: 용서하는 삶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한 사람씩 코리텐붐 여사의 손에 입맞추며 그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앞에 감사를 표하는데 문득 다가서는 한 남자의 얼굴을 보니 포로수용소에서 그녀의 옷을 벗기며 채찍을 가하고 침을 뱉었던 사람이었읍니다. 순간 그녀는 온 몸이 얼어붙고 말았읍니다. 그녀의 언니는 그 남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며 그녀가 받았던 갖은 조롱을 생각할 때 그녀의 손은 도저히 내밀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에 코리텐붐 여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영혼의 진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읍니다. "주님,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나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믿나이다. 주여! 믿나이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 독일 간수의 손을 잡는 순간 하늘의 사랑이 자기의 영혼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읍니다. 그 날 그녀는 새로이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참으로 깨달았으며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닫는 엄청난 환희의 순간이 었다고 후에 고백하고 있읍니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이런 명령들은 순종할 때에 비로소 사랑하고 용서하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당신은 용서받는 삶 그리고 용서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제목: 용서하는 삶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하나님께 죄를 범했을 때 그것을 자백하면 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읍니다. 개신교의 신자들과 천주교의 신자들의 비교를 정신과 의사들이 종종 많이하고 있읍니다. 폴 토레니에라는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있읍니다. 이 사람의 치료 사례집속에 보면 이런 말이있읍니다. 신앙과 질병과의 관계에 대해서, 병과 사람의 생각과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치료의 사례가 있읍니다.
 불치의 빈혈증에 걸린 한 소녀가 날마다 치료를 받으로 왔읍니다. 어떤 정신 요법이나 약물 요법으로도 낫지 않는 병이었읍니다. 마침내 산중의 요양소로 보냈읍니다. 얼마 후 요양소에서 진단을 했는데 혈액 검사의 결과 아무 이상이 없고 빈혈증도 아니고 불치의 병도 아닌 정상이었읍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지난번 자신에게 진단을 받을 때와 요양소에서 진단을 받을 때까지의 생활상에 무슨 변동이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평생 지독하게 미워했던 사람을 갑자기 용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환해지고 삶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이 되고 적극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점점 몸의 병이 나았다고 했읍니다. 그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목: 용서하라
 
 
[서부 전선엔 이상 없다]는 영화가 있었읍니다. 주인공이 적군과 총칼을 겨누고 있다가 참호에서 갑자기 뛰어나와서 적을 향해서 외치는 그 절규가"친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그대들을 적으로만 인식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그대들을 나와 똑같은 동료로 바라보고 있노라. 그대들은 더 이상 나의 소총이나 수류탄 투척의 대상이 아니다.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와 똑같은 불행한 인간들이다. 그대들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가슴을 태우면서 지금도 기도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리는 꼭같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지 아니한가. 친구들이여.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다만 모두 죄인일 따름이다.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일 따름이다."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민족사의 내일을 꿈꾸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총칼을 겨누었던 북의 형제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오." 이런 민족의 고백이 우리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꿈틀거릴 때, 아니 이 고백의 실천을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 내가 내 곁에 있는 이웃을 붙들고 "형제여. 자매여.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 사랑하는 아내여, 남편이여. 이제 당신을 용서하오"라는 고백이 일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민족의 내일을 이야기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출처 : 거룩한 백성들
글쓴이 : 행복인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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